사자후에 대한 큰 경(Mahāsīhanādasutta, M12)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베쌀리 시의 서쪽 근교의 한 총림에 계셨다.
2. 그런데 그 때에 릿차위 족의 아들 쑤낙캇따는 가르침과 계율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베쌀리 시의 대중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쑤낙캇따]“수행자 고따마는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지 못했고, 그에게는 고귀한 분이 갖추어야 할 앎과 봄에 관한 지극한 탁월함이 없다. 수행승 고따마는 단지 사유를 조작하여 자신의 말재주에 따라 추론하여 법을 설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설할 때에는,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를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로 이끌기 위한 것이라고 설한다.”
3. 마침 존자 사리뿟따가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베쌀리 시로 탁발을 하러 갔다. 존자 사리뿟따는 릿차위 족의 아들 쑤낙캇따가 베쌀리 시의 대중에게 이와 같이 ‘수행자 고따마는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지 못했고, 그에게는 고귀한 분이 갖추어야 할 앎과 봄에 관한 지극한 탁월함이 없다. 수행승 고따마는 단지 사유를 조작하여 자신의 말재주에 따라 추론하여 법을 설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설할 때에는,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를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로 이끌기 위한 것이라고 설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4. 그래서 존자 사리뿟따는 베쌀리 시로 탁발하러 가서 식사를 마친 뒤, 탁발에서 돌아와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 쪽으로 물러앉았다. 한 쪽으로 물러앉은 존자 사리뿟따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사리뿟따]“세존이시여, 릿차위 족의 아들 쑤낙캇따는 가르침과 계율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베쌀리 시의 대중에게 이와 같이 ‘수행자 고따마는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지 못했고, 그에게는 고귀한 분이 갖추어야 할 앎과 봄에 관한 지극한 탁월함이 없다. 수행승 고따마는 단지 사유를 조작하여 자신의 말재주에 따라 추론하여 법을 설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설할 때에는,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를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로 이끌기 위한 것이라고 설한다.’라고 말했습니다.”
5.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쑤낙캇따는 분노하였고, 그 분노에 끌려서 그와 같이 말한 것이다. 그런데 사리뿟따여, ‘나는 비방하리라.’고 생각한 어리석은 쑤낙캇따는 오히려 여래에 관해 칭찬을 했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를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로 이끌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여래에 관해 칭찬하는 것이 된다.
6.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쑤낙캇따는 나에 관해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공양 받을 만한 분,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분, 명지와 덕행을 갖추신 분, 바른 길로 잘 가신 분, 세상을 이해하는 분,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신 분, 사람들을 길들이시는 분, 신들과 인간의 스승이신 분, 부처님, 세상에 존귀하신 분이다.’라고 법에 따라 유추하지 못한다.
7.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쑤낙캇따는 나에 관해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의 정신적 능력을 즐긴다. 그는 하나에서 여럿이 되며, 여럿에서 하나가 된다.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자유로운 공간처럼 집착 없이 담을 통과하고 성벽을 통과하고 산을 통과해서 간다. 물속에서처럼 땅속을 드나든다. 땅 위에서처럼 물에서도 빠지지 않고 걷는다. 날개 달린 새처럼 공중에서 앉은 채 움직인다. 손으로 이처럼 큰 위력을 지니고, 이처럼 큰 능력을 지닌 달과 해를 만지고 쓰다듬는다. 하느님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육신으로 영향력을 미친다.’라고 법에 따라 유추하지 못한다.
8.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쑤낙캇따는 나에 관해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 귀로 멀고 가까운 신들과 인간의 소리를 둘 다 듣는다.’라고 법에 따라 유추하지 못한다.
9.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쑤낙캇따는 나에 관해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나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다른 뭇 삶,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안다. 그는 탐욕으로 가득 찬 마음을 탐욕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알거나, 탐욕에서 벗어난 마음을 탐욕에서 벗어난 마음이라고 안다. 성냄으로 가득 찬 마음을 성냄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알거나, 성냄에서 벗어난 마음을 성냄에서 벗어난 마음이라고 안다.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마음을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알거나,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마음을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마음이라고 안다. 통일된 마음을 통일된 마음이라고 알거나, 흩어진 마음을 흩어진 마음이라고 안다. 최상의 마음을 최상의 마음이라고 알며, 최상이 아닌 마음을 최상이 아닌 마음이라고 안다. 삼매에 든 마음을 삼매에 든 마음이라고 알며, 삼매에 들지 못한 마음을 삼매에 들지 못한 마음이라고 안다.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고 알며,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라고 안다.’라고 법에 따라 유추하지 못한다.
10. 사리뿟따여, 여래에게는 열 가지 힘이 있는데 그 힘을 갖춘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선언하고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토하며 하늘의 수레를 굴린다. 열 가지란 어떠한 것인가?
11. 사리뿟따여, 이 세상에서 여래는 조건을 갖춘 경우와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를 여실히 안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조건을 갖춘 경우를 조건을 갖춘 경우로,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를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로 아는 힘을, 사리뿟따여, 여래의 여래힘이라고 하는데, 그 힘에 의해서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선언하고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토하며 하늘의 수레를 굴린다.
12. 사리뿟따여, 또한 이 세상에서 여래는 과거, 미래, 현재의 업보에 관해 가능성과 조건을 살펴 여실히 그 과보를 안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과거, 미래, 현재의 업보에 관해 가능적으로 조건적으로 여실히 그 과보를 아는 힘을, 사리뿟따여, 여래의 여래힘이라고 하는데, 그 힘에 의해서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선언하고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토하며 하늘의 수레를 굴린다.
13. 사리뿟따여, 또한 이 세상에서 여래는 모든 운명으로 인도하는 길에 관해 안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모든 운명으로 인도하는 길에 관해 아는 힘을, 사리뿟따여, 여래의 여래힘이라고 하는데, 그 힘에 의해서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선언하고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토하며 하늘의 수레를 굴린다.
14. 사리뿟따여, 또한 이 세상에서 여래는 많은 세계로 구성된 다양한 세계의 세계에 관해 안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많은 세계로 구성된 다양한 세계의 세계에 관해 아는 힘을, 사리뿟따여, 여래의 여래힘이라고 하는데, 그 힘에 의해서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선언하고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토하며 하늘의 수레를 굴린다.
15. 사리뿟따여, 또한 이 세상에서 여래는 다른 뭇 삶들의 여러 가지 경향에 관해 안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다른 뭇 삶들의 여러 가지 경향에 관해 아는 힘을, 사리뿟따여, 여래의 여래힘이라고 하는데, 그 힘에 의해서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선언하고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토하며 하늘의 수레를 굴린다.
16. 사리뿟따여, 또한 이 세상에서 여래는 뭇 삶들의 능력의 높고 낮음에 관해 안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뭇 삶들의 능력의 높고 낮음에 관해 아는 힘을, 사리뿟따여, 여래의 여래힘이라고 하는데, 그 힘에 의해서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선언하고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토하며 하늘의 수레를 굴린다.
17. 사리뿟따여, 또한 이 세상에서 여래는 선정, 해탈, 삼매, 성취에 대해서 오염과 청정과 벗어남을 안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선정, 해탈, 삼매, 성취에 대해서 오염과 청정과 그 벗어남을 아는 힘을, 사리뿟따여, 여래의 여래힘이라고 하는데, 그 힘에 의해서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선언하고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토하며 하늘의 수레를 굴린다.
18. 사리뿟따여, 또한 이 세상에서 여래는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기억한다. 예를 들어 ‘한 번 태어나고 두 번 태어나고 세 번 태어나고 네 번 태어나고 다섯 번 태어나고, 열 번 태어나고 스무 번 태어나고 서른 번 태어나고 마흔 번 태어나고 쉰 번 태어나고 백 번 태어나고 천 번 태어나고 십만 번 태어나고 수많은 세계가 파괴되고 수많은 세계가 생성되고 수많은 세계가 파괴되고 생성되는 시간을 지나면서, 당시에 나는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성을 지니고 이러한 용모를 지니고 이러한 음식을 먹고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보고 이러한 목숨을 지녔고, 나는 그 곳에서 죽은 뒤에 나는 다른 곳에 태어났는데, 거기서 나는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성을 지니고 이러한 용모를 지니고 이러한 음식을 먹고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보고 이러한 목숨을 지녔었다. 그 곳에서 죽은 뒤에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나는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상세히 기억한다. 사리뿟따여, 여래는 그의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상세히 기억하는 힘을, 사리뿟따여, 여래의 여래힘이라고 하는데, 그 힘에 의해서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선언하고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토하며 하늘의 수레를 굴린다.
19. 사리뿟따여, 또한 이 세상에서 여래는 청정한,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뭇 삶들을 본다.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업보에 따라서 등장하는 뭇 삶들을 본다. 어떤 뭇 삶들은 몸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입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마음으로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고귀한 분들을 비난하고 잘못된 견해를 지니고, 잘못된 견해에 따라 행동한다. 그래서 그들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그러나 다른 뭇 삶들은 몸으로 선행을 하고 입으로 선행을 하고 마음으로 선행을 하였다. 그들은 고귀한 분들을 비난하지 않고 올바른 견해를 지니고 올바른 견해에 따라 행동한다. 그래서 그들은 육체가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난다. 이와 같이 여래는 청정한,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뭇 삶들을 관찰한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여래가 청정한,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뭇 삶들을 관찰하는 힘을, 사리뿟따여, 여래의 여래힘이라고 하는데, 그 힘에 의해서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선언하고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토하며 하늘의 수레를 굴린다.
20. 사리뿟따여, 또한 이 세상에서 여래는 번뇌를 부수어 번뇌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잘 알고 깨달아 성취한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번뇌를 부수어 번뇌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잘 알고 깨달아 성취하는 힘을, 사리뿟따여, 여래의 여래힘이라고 하는데, 그 힘에 의해서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선언하고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토하며 하늘의 수레를 굴린다.
21. 사리뿟따여, 여래에게는 이와 같은 여래의 열 가지 힘이 있는데 그 힘을 갖춘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선언하고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토하며 하늘의 수레를 굴린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서 나에 관해 이와 같이 ‘수행자 고따마는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지 못했고, 그에게는 고귀한 분이 갖추어야 할 앎과 봄에 관한 지극한 탁월함이 없다. 수행승 고따마는 단지 사유를 조작하여 자신의 말재주에 따라 추론하여 법을 설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설할 때에는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를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로 이끌기 위한 것이라고 설한다.’라고 말하며,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던져지듯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사리뿟따여, 예를 들어 계율을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수행승은 지금 여기에서 궁극적인 지혜를 성취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던져지듯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22. 사리뿟따여, 여래에게는 네 가지의 두려움 없음이 있는데 그 두려움 없음을 갖춘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선언하고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토하며 하늘의 수레를 굴린다. 네 가지란 어떠한 것인가?
23. 사리뿟따여, 수행자든 바라문, 신, 악마, 하느님이든 이 세상의 어떤 자이든, 나에 대해 ‘올바로 깨달은 자라고 그대가 주장하더라도, 그 가르침들은 올바로 깨달아진 것이 아니다.’라고 나를 비난할 수 있는 근거가 없음을 가르침에 견주어 안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전히 근거가 없음을 알기 때문에, 나는 도달한 안온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두려움 없음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공포 없음에 머물러 있다.
24. 사리뿟따여, 수행자든 바라문, 신, 악마, 하느님이든 이 세상의 어떤 자이든, 나에 대해 ‘번뇌를 부순 자라고 그대가 주장하더라도, 그대에게 그 번뇌들이 부수어진 것은 아니다.’라고 나를 비난할 수 있는 근거가 없음을 가르침에 견주어 안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전히 근거가 없음을 알기 때문에, 나는 도달한 안온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두려움 없음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공포 없음에 머물러 있다.
25. 사리뿟따여, 수행자든 바라문, 신, 악마, 하느님이든 이 세상의 어떤 자이든, 나에 대해 ‘그대가 장애가 되는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것들을 수용하는 자에게는 장애가 될 수 없다.’라고 나를 비난할 수 있는 근거가 없음을 가르침에 견주어 안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전히 근거가 없음을 알기 때문에, 나는 도달한 안온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두려움 없음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공포 없음에 머물러 있다.
26. 사리뿟따여, 수행자든 바라문, 신, 악마, 하느님이든 이 세상의 어떤 자이든, 나에 대해 ‘그대가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설한다 해도 그것이 그 가르침을 실천한 자를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로 이끌지 못한다.’라고 나를 비난할 수 있는 근거가 없음을 가르침에 견주어 안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전히 근거가 없음을 알기 때문에, 나는 도달한 안온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두려움 없음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공포 없음에 머물러 있다.
27. 사리뿟따여, 여래에게는 이와 같은 네 가지의 두려움 없음이 있는데, 그 두려움 없음을 갖춘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선언하고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토하며 하늘의 수레를 굴린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서 나에 관해 이처럼 ‘수행자 고따마는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지 못했고, 그에게는 고귀한 분이 갖추어야 할 앎과 봄에 관한 지극한 탁월함이 없다. 수행승 고따마는 단지 사유를 조작하여 자신의 말재주에 따라 추론하여 법을 설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설할 때에는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를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로 이끌기 위한 것이라고 설한다.’라고 말하며,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던져지듯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사리뿟따여, 예를 들어 계율을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수행승은 지금 여기에서 궁극적인 지혜를 성취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던져지듯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28. 사리뿟따여, 여덟 가지의 모임이 있다. 여덟 가지란 무엇인가? 왕족의 모임, 사제의 모임, 장자의 모임, 수행자의 모임, 사천왕의 모임, 도솔천의 모임, 악마의 모임, 하느님의 모임이다. 이것들을 여덟 가지 모임이라고 한다. 사리뿟따여, 네 가지 두려움 없음을 갖춘 여래는 이들 여덟 가지 모임을 찾아서 들어갔다.
29. 나는 일찍이 실로 수많은 왕족의 모임을 찾아갔다. 거기에서 내가 함께 앉아서 함께 대화하고 함께 토론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전히 그것에서 두려움과 공포에 떨어야 할 근거가 없음을 알기 때문에 도달한 안온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두려움 없음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공포 없음에 머물러 있다.
30. 사리뿟따여, 나는 일찍이 실로 수많은 사제들의 모임을 찾아갔다. 거기에서 내가 함께 앉아서 함께 대화하고 함께 토론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전히 그것에서 두려움과 공포에 떨어야 할 근거가 없음을 알기 때문에 도달한 안온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두려움 없음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공포 없음에 머물러 있다.
31. 나는 일찍이 실로 수많은 장자의 모임을 찾아갔다. 거기에서 내가 함께 앉아서 함께 대화하고 함께 토론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전히 그것에서 두려움과 공포에 떨어야 할 근거가 없음을 알기 때문에 도달한 안온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두려움 없음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공포 없음에 머물러 있다.
32. 나는 일찍이 실로 수많은 수행자들의 모임을 찾아갔다. 거기에서 내가 함께 앉아서 함께 대화하고 함께 토론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전히 그것에서 두려움과 공포에 떨어야 할 근거가 없음을 알기 때문에 도달한 안온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두려움 없음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공포 없음에 머물러 있다.
33. 나는 일찍이 실로 수많은 네 하늘나라 대왕의 신들의 하늘에서 열리는 모임을 찾아갔다. 거기에서 내가 함께 앉아서 함께 대화하고 함께 토론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전히 그것에서 두려움과 공포에 떨어야 할 근거가 없음을 알기 때문에 도달한 안온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두려움 없음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공포 없음에 머물러 있다.
34. 나는 일찍이 실로 수많은 만족을 아는 하늘나라의 신들의 하늘에서 열리는 모임을 찾아갔다. 거기에서 내가 함께 앉아서 함께 대화하고 함께 토론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전히 그것에서 두려움과 공포에 떨어야 할 근거가 없음을 알기 때문에 도달한 안온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두려움 없음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공포 없음에 머물러 있다.
35. 나는 일찍이 실로 수많은 악마의 모임을 찾아갔다. 거기에서 내가 함께 앉아서 함께 대화하고 함께 토론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전히 그것에서 두려움과 공포에 떨어야 할 근거가 없음을 알기 때문에 도달한 안온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두려움 없음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공포 없음에 머물러 있다.
36. 나는 일찍이 실로 수많은 신들의 하느님 나라에서 열리는 모임을 찾아갔다. 거기에서 내가 함께 앉아서 함께 대화하고 함께 토론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전히 그것에서 두려움과 공포에 떨어야 할 근거가 없음을 알기 때문에 도달한 안온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두려움 없음에 머물러 있고, 도달한 공포 없음에 머물러 있다.
37.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서 나에 관해 이처럼 ‘수행자 고따마는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지 못했고, 그에게는 고귀한 분이 갖추어야 할 앎과 봄에 관한 지극한 탁월함이 없다. 수행승 고따마는 단지 사유를 조작하여 자신의 말재주에 따라 추론하여 법을 설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설할 때에는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를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로 이끌기 위한 것이라고 설한다.’라고 말하며,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던져지듯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사리뿟따여, 예를 들어 계율을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수행승은 지금 여기에서 궁극적인 지혜를 성취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던져지듯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38. 사리뿟따여, 이러한 네 갈래 태어남이 있다. 네 갈래란 어떠한 것인가? 난생, 태생, 습생, 화생이다. 사리뿟따여, 난생이란 어떠한 것인가? 사리뿟따여, 생명체가 그 껍질을 깨고 태어나면, 사리뿟따여, 이것을 난생이라고 한다. 사리뿟따여, 태생이란 어떠한 것인가? 사리뿟따여, 생명체가 태의 막을 까고 태어나면, 사리뿟따여, 이것을 태생이라고 한다. 사리뿟따여, 습생이란 어떠한 것인가? 사리뿟따여, 생명체가 썩은 물고기, 부패한 시체, 부패한 굳은 우유에서나 물웅덩이나 연못에서 태어나면, 사리뿟따여, 이것을 습생이라고 한다. 사리뿟따여, 화생이란 어떠한 것인가? 사리뿟따여, 신들이나 지옥의 뭇 삶들이나 특수한 인간이나 특수한 타락한 영혼들이 생겨나는데, 사리뿟따여, 이것을 마음에서 홀연히 생겨나는 화생이라고 한다.
39. 사리뿟따여, 이러한 네 갈래 태어남이 있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서 나에 관해 이처럼 ‘수행자 고따마는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지 못했고, 그에게는 고귀한 분이 갖추어야 할 앎과 봄에 관한 지극한 탁월함이 없다. 수행승 고따마는 단지 사유를 조작하여 자신의 말재주에 따라 추론하여 법을 설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설할 때에는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를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로 이끌기 위한 것이라고 설한다.’라고 말하며,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던져지듯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사리뿟따여, 예를 들어 계율을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수행승은 지금 여기에서 궁극적인 지혜를 성취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던져지듯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40. 이러한 다섯 갈래의 운명이 있다. 다섯 갈래란 어떠한 것인가? 지옥, 축생, 아귀, 인간, 천상이다. 사리뿟따여, 나는 지옥과 지옥에 이르는 길, 지옥에 이르는 행로를 알며, 그 행로를 따라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는 것을 잘 안다. 또한 사리뿟따여, 나는 축생과 축생에 이르는 길, 축생에 이르는 행로를 알며, 그 행로를 따라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축생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잘 안다. 또한 사리뿟따여, 나는 아귀와 아귀에 이르는 길, 아귀에 이르는 행로를 알며, 그 행로를 따라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아귀로 태어난다는 것을 잘 안다. 또한 사리뿟따여, 나는 인간과 인간에 이르는 길, 인간에 이르는 행로를 알며, 그 행로를 따라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잘 안다. 또한 사리뿟따여, 나는 천상과 천상에 이르는 길, 천상에 이르는 행로를 알며, 그 행로를 따라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천상에 태어난다는 것을 잘 안다. 나는 열반과 열반에 이르는 길, 열반에 이르는 행로를 알며, 그 행로를 따라 번뇌를 부수어서 번뇌 없이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잘 알고 깨달아 성취한다.
41. 사리뿟따여, 여기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나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나,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을 관찰한다. 예를 들어 사리뿟따여, 사람 키 남짓한 크기로, 불꽃이나 연기가 없이 작열하는 숯불의 구덩이가 있는데 여기에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기진맥진하고 목이 타고 갈증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오로지 한 길을 따라 이 숯불 구덩이를 바라보며 왔다고 하면, 그것을 보고 눈 있는 자는 그에 대해 이와 같이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는 숯불 구덩이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나중에 그 사람이 그 불구덩이에 빠져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나,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을 볼 것이다.
42. 사리뿟따여, 여기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나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축생으로 태어날 것이다.’라고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축생으로 태어나,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을 볼 것이다. 예를 들어 사리뿟따여, 사람 키 남짓한 크기로, 똥으로 가득 찬 똥구덩이가 있는데 여기에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기진맥진하고 목이 타고 갈증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오로지 한 길을 따라 이 똥구덩이를 바라보며 왔다고 하면, 그것을 보고 눈 있는 자는 그에 대해 이와 같이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는 똥으로 가득 찬 똥구덩이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나중에 그 사람이 그 똥구덩이에 빠져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축생으로 태어날 것이다.’라고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축생으로 태어나,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을 볼 것이다.
43. 사리뿟따여, 여기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나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아귀로 태어날 것이다.’라고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아귀로 태어나,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을 볼 것이다. 예를 들어 사리뿟따여, 평탄하지 못한 땅위에 생겨나 엷은 잎사귀들의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가진 나무가 있는데, 여기에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기진맥진하고 목이 타고 갈증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오로지 한 길을 따라 그 나무를 바라보며 왔다고 하면, 그것을 보고 눈 있는 자는 그에 대해 이와 같이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는 평탄하지 못한 땅위에 생겨나 듬성듬성한 잎사귀들로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가진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로 올 것이다.’라고 말하고, 나중에 그 사람이 그 나무에 도착해서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아귀로 태어날 것이다.’라고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아귀로 태어나,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을 볼 것이다.
44. 사리뿟따여, 여기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나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인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인간에 태어나, 즐거움이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을 볼 것이다. 예를 들어 사리뿟따여, 평탄한 땅위에 생겨나 많은 잎사귀들의 짙은 그림자를 가진 나무가 있는데, 여기에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기진맥진하고 목이 타고 갈증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오로지 한 길을 따라 그 나무를 바라보며 왔다고 하면, 그것을 보고 눈 있는 자는 그에 대해 이와 같이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는 평탄한 땅위에 생겨나 무성한 잎사귀들의 짙은 그림자를 가진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로 올 것이다.’라고 말하고, 나중에 그 사람이 그 나무에 도착해서 즐거움이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인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인간에 태어나서, 즐거움이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을 볼 것이다.
45. 사리뿟따여, 여기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나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천상에 태어나, 오로지 즐거운 경험을 하는 것을 볼 것이다. 예를 들어 사리뿟따여, 안팎이 잘 칠해지고 바람이 차단되고 빗장으로 채워지고 창문이 닫힌 이층누각에 안락의자, 긴 털의 흑모 양탄자, 긴 털의 백모 양탄자, 꽃무늬 양탄자, 까달리 사슴가죽으로 만든 최상의 모포, 차양, 붉은 빛 머리베개와 발베개가 있는데, 여기에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기진맥진하고 목이 타고 갈증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오로지 한 길을 따라 그 누각을 바라보며 왔다고 하면, 그것을 보고 눈 있는 자는 그에 대해 이와 같이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는 안팎이 잘 칠해지고 바람이 차단되고 빗장으로 잠기고 창문이 닫힌 누각에 안락의자, 긴 털의 흑모 양탄자, 긴 털의 백모 양탄자, 꽃무늬 양탄자, 까달리 사슴가죽으로 만든 최상의 모포, 차양, 양쪽이 붉은 빛 머리베개와 발베개가 있는데, 그 누각으로 올 것이다.’라고 말하고, 나중에 그 사람이 그 누각에 도착해서 오로지 즐거운 경험을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천상에 태어나, 오로지 즐거운 경험을 하는 것을 볼 것이다.
46. 사리뿟따여, 여기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나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번뇌를 부수어 번뇌없이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증득하고 깨달아 성취할 것이다.’라고 안다. 나중에 나는 그가 번뇌를 부수어 번뇌 없이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증득하고 깨달아 성취하여 오로지 즐거운 경험을 하는 것을 볼 것이다. 예를 들어 사리뿟따여, 맑고 정갈하고 차가운 물로 가득 차서 투명하고 아름다운 둑으로 둘러싸여 즐길 만하고, 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숲이 있는 연못이 있는데, 여기에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기진맥진하고 목이 타고 갈증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오로지 한 길을 따라 그 연못을 바라보며 왔다고 하면, 그것을 보고 눈 있는 자는 그에 대해 이와 같이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는 맑고 정갈하고 차가운 물로 가득 차서 투명하고 아름다운 둑으로 둘러싸여 즐길 만하고, 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숲이 있는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으로 올 것이다.’라고 말하고, 나중에 그 사람이 그 연못에 들어가서 목욕하고 마시고 일체의 근심과 피로와 고뇌를 없애고 다시 나와서, 그 총림에서 앉거나 누워서 오로지 즐거운 경험을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번뇌를 부수어 번뇌 없이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증득하고 깨달아 성취할 것이다.’라고 안다. 나중에 나는 그가 번뇌를 부수어 번뇌 없이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증득하고 깨달아 성취하여 오로지 즐거운 경험을 하는 것을 볼 것이다.
47. 사리뿟따여, 이러한 다섯 갈래의 운명이 있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서 나에 관해 이처럼 ‘수행자 고따마는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지 못하고 고귀한 분에게 적합한 앎과 봄에 관한 지극한 탁월함이 없다. 수행승 고따마는 단지 사유를 조작하여 자신의 말재주에 따라 추론하여 법을 설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설할 때에는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를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로 이끌기 위한 것이라고 설한다.’고 말하며,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던져지듯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사리뿟따여, 예를 들어 계율을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수행승은 지금 여기에서 궁극적인 지혜를 성취하는 것처럼, 그 결과에 대해 이와 같이 나는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던져지듯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고 나는 말한다.
48. 그런데 사리뿟따여, 나는 네 가지 범주의 청정한 삶을 실천했다. 나는 참으로 고통스런 삶을 살았는데, 극단적으로 고통스런 삶을 살았다. 나는 참으로 구차한 삶을 살았는데, 극단적으로 구차한 삶을 살았다. 나는 참으로 삼가는 삶을 살았는데, 극단적으로 삼가는 삶을 살았다. 나는 참으로 외로운 삶을 살았는데, 극단적으로 외로운 삶을 살았다.
49. 사리뿟따여, 그 가운데 나의 고통스런 삶은 이와 같았다. 나는 벌거벗고, 편의를 거부하고, 손가락을 빨고, 오라는 초대를 거부하고, 머물라는 환대도 거부하고, 제공된 음식을 거부하고, 할당된 음식을 거부하고, 식사의 초대도 거부했다. 나는 옹기에서 떠주는 것을 받지 않고, 냄비에서 떠주는 것을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가서 받지 않고, 지팡이를 가로질러 받지 않고, 공이로 찧고 있는 것을 받지 않고, 둘이 함께 식사할 때에 받지 않고, 임신부에게 받지 않고, 젖먹이는 여자에게 받지 않고, 남자에게 안긴 여자에게 받지 않고, 모여 있는 곳에서 받지 않고, 베풀어지는 곳에서 받지 않고, 개가 기다리는 곳에서 받지 않고, 파리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받지 않고, 물고기를 받지 않고, 고기를 받지 않고, 곡주를 마시지 않고, 과일주를 마시지 않고, 발효된 차를 마시지 않았다. 나는 한 끼를 위해 한 집에 머물렀고, 두 끼를 위해 두 집에 머물렀고, 세 끼를 위해 세 집에 머물렀고, 네 끼를 위해 네 집에 머물렀고, 다섯 끼를 위해 다섯 집에 머물렀고, 여섯 끼를 위해 여섯 집에 머물렀고, 일곱 끼를 위해 일곱 집에 머물렀다. 나는 한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고, 두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고, 세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고, 네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고, 다섯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고, 여섯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고, 일곱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았다. 나는 하루 한 번 식사를 했고, 이틀에 한 번 식사를 했고, 사흘에 한 번 식사를 했고, 나흘에 한 번 식사를 했고, 닷새에 한 번 식사를 했고, 엿새에 한 번 식사를 했고, 이레에 한 번 식사를 했다. 이와 같이 해서 보름에 한 번 하는 정기적인 식사를 실천했다. 나는 오로지 야채만을 먹거나, 기장만을 먹거나, 생쌀만을 먹거나, 다둘라쌀만을 먹거나, 하타초만을 먹거나, 쌀겨만을 먹거나, 반즙만을 먹거나, 참깨가루만을 먹거나, 풀만을 먹거나, 쇠똥만을 먹었다. 또한 나는 숲 속의 나무뿌리나 열매로 연명하거나, 자연적으로 떨어진 열매로 연명했다. 나는 삼베옷을 입고, 삼베와 섞어 짠 옷을 입고, 시체에 입혀진 옷을 입고, 누더기옷을 입고, 띠리따 나무의 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검은 영양의 가죽옷을 입고, 영양의 가죽실로 짠 옷을 입고, 길상초로 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짠 옷을 입고, 나뭇조각으로 만든 옷을 입고,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짠 옷을 입고, 말의 털로 짠 옷을 입고, 새털로 짠 옷을 입었다. 나는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수행을 추구하는 자로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아버렸다. 나는 앉는 것을 거부하고 계속 서 있는 자로서 앉는 것을 거부하고 계속 서 있었다. 나는 웅크리고 앉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자로서 계속 웅크리고 앉았다. 나는 못이 박힌 침대를 잠자리로 사용하는 자로서 못이 박힌 침대를 사용했다. 나는 저녁까지 하루 세 번 목욕재계하는 자로서 하루 세 번 목욕을 실천하며 살았다. 이러한 다양한 방법으로 나는 몸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것을 추구했다. 나의 고행은 이와 같았다.
50. 사리뿟따여, 그 가운데 나의 구차한 삶은 이와 같았다. 다년간 먼지와 때가 나의 몸에 쌓여 피부이끼가 생겨났다. 예를 들어 사리뿟따여, 띤두까 나무의 그루터기가 다년간 지나면서, 자연히 피부이끼가 생겨나는 것처럼, 이와 같이 다년간 먼지와 때가 나의 몸에 쌓여 피부이끼가 생겨났다. 사리뿟따여, 나에게는 이와 같이 ‘오, 내가 이 먼지와 때를 털어 내자.’라든가 ‘다른 사람이 나의 이 먼지와 때를 손으로 털어내게 하자.’라든가 하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았다. 사리뿟따여, 결코 그러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았다. 사리뿟따여, 나의 구차한 삶은 이와 같았다.
51. 사리뿟따여, 그 가운데 나의 삼가는 삶은 이와 같았다. 사리뿟따여, 나는 나아가고 물러섬을 깊이 마음챙기고 한 방울의 물에도 나의 연민을 실어 ‘나는 길 위의 틈새에 사는 작은 생명체라도 다치지 않기를’하고 기원했다. 사리뿟따여, 나의 삼가는 삶은 이와 같았다.
52. 사리뿟따여, 그 가운데 나의 외로운 삶은 이와 같았다. 사리뿟따여, 나는 어떤 한림처에 들어가서 만약 소치는 사람이나 가축을 키우는 사람이나 또는 나물캐는 사람이나 땔감을 줍는 사람이나 나무꾼을 보면, 숲에서 숲으로, 밀림에서 밀림으로, 계곡에서 계곡으로, 고지에서 고지로 도피했다. 그것은 그들은 나를 보지 않고 나는 그들을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어 사리뿟따여, 한림처에 사는 사슴은 인간을 보고 숲에서 숲으로, 밀림에서 밀림으로, 계곡에서 계곡으로, 고지에서 고지로 도피한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나는 어떤 한림에 들어가서 만약 소치는 사람이나 가축을 키우는 사람이나 또는 나물캐는 사람이나 땔감을 줍는 사람이나 나무꾼을 보면, 숲에서 숲으로, 밀림에서 밀림으로, 계곡에서 계곡으로, 고지에서 고지로 도피했다. 그것은 그들은 나를 보지 않고 나는 그들을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리뿟따여, 나의 외로운 삶은 이와 같았다.
53. 사리뿟따여, 나는 외양간에 소가 떠나고, 소치는 자도 떠나면, 그 곳에 사지를 구부리고 들어가, 젖을 빠는 어린 송아지들의 똥을 먹었다. 또한 나는 자신의 똥과 오줌이 계속 나오는 한, 참으로 나는 나 자신의 똥과 오줌을 먹었다. 사리뿟따여, 내가 지독하게 부정한 음식을 먹는 것은 이와 같았다.
54. 사리뿟따여, 나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총림으로 들어갔다. 사리뿟따여, 그 곳에서 그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총림에서 실로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은 ‘어떠한 자든지 아직 탐욕을 제거하지 못한 자로서 이 총림에 들어오면 거의 모두가 몸에 털이 곤두선다.’는 사실이었다.
55. 사리뿟따여, 나는 한겨울 차가운 밤이 서리가 내리는 팔일간에 찾아오면, 나는 노천에서 밤을 지새우고 숲에서 낮을 보냈다. 그리고 뜨거운 여름의 마지막 달에 나는 노천에서 낮을 보내고 숲에서 밤을 지냈다. 그런데 사리뿟따여, 그 때에 나에게 즉흥적으로 전에 들은 적이 없는 시가 떠올랐다.
밤으로 떨고 낮으로는 타버리네.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숲에 홀로
발가벗었는데 옆에는 모닥불도 없지만,
아직도 현자는 탐구를 멈추지 않네.
56. 사리뿟따여, 나는 죽은 자의 뼈를 베개 삼아 무덤가에 나의 침대를 만들었다. 소치는 아이들이 다가와 내게 침을 뱉고, 오줌을 싸고, 오물을 싸고, 오물을 던지고, 나의 귀에 막대기를 넣었다. 그러나 사리뿟따여, 나는 결코 그들에 대해 악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다. 사리뿟따여, 나의 평정한 삶은 이와 같았다.
57. 사리뿟따여,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이와 같이 설하고 이와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청정은 음식에서 온다.’그들은‘콜라 열매를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콜라 열매를 먹고, 그들은 콜라 열매가루를 먹고, 그들은 콜라 열매의 즙을 마시고, 또한 그들은 수많은 종류의 콜라 열매의 혼합음료를 복용한다. 사리뿟따여, 나도 역시 하루에 한 개의 콜라 열매를 먹었던 것을 기억한다. 사리뿟따여, 그대는‘그 때에는 혹시 커다란 콜라 열매가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겠지만, 사리뿟따여, 그 때에도 가장 큰 콜라 열매는 지금 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사리뿟따여, 하루 한 깨의 콜라 열매를 먹자 나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다.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사지는 포도 줄기나 대나무 줄기의 옹이처럼 되었고,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사지는 아시띠까 풀의 마디나 깔라 풀의 마디처럼 되었다. 또한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엉덩이는 낙타의 발처럼 되었고 나의 척추는 회전하는 체인처럼 울퉁불퉁해졌다. 나의 갈빗대는 오래된 지붕 없는 헛간의 흔들리는 서까래처럼 섬뜩하게 튀어나왔다. 또한 그러한 소식으로 인해서 나의 눈빛은 눈구멍에 깊이 가라앉아, 깊은 우물에 멀리 가라앉은 물빛처럼 보였다. 또한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머리가죽은 주름지고 시들어서, 푸르고 맛이 쓴 호리병박이 바람과 햇빛에 주름지고 시든 것과 같았다. 또한 사리뿟따여,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창자가 나의 등에 붙어버려, 내가 창자를 만지면 등뼈가 만져졌고, 등뼈를 만지면 창자가 만져졌다. 또한 사리뿟따여,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내가 똥이나 오줌을 누려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또한 사리뿟따여,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내가 내 몸을 편하게 하기 위해 손으로 사지를 문지르면, 털이 뿌리까지 썩어서 몸에서 떨어져나갔다.
58. 사리뿟따여,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이와 같이 설하고 이와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 ‘청정은 음식에서 온다.’ 그들은 ‘콩을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콩을 먹고, 그들은 콩가루를 먹고 그들은 콩즙을 마시고 또한 그들은 수많은 종류의 콩의 혼합음료를 복용한다. 사리뿟따여, 나도 역시 하루에 한 알의 콩을 먹었던 것을 기억한다. 사리뿟따여, 그대는 ‘그 때에는 혹시 커다란 콩이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겠지만, 사리뿟따여, 그 때에도 가장 큰 콩은 지금 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사리뿟따여, 하루 하나의 콩을 먹자 나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다.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사지는 포도줄기나 대나무 줄기의 옹이처럼 되었고,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사지는 아씨띠까 풀의 마디나 깔라 풀의 마디처럼 되었다. 또한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엉덩이는 낙타의 발처럼 되었고, 나의 척추는 회전하는 사슬처럼 울퉁불퉁해졌다. 나의 갈빗대는 오래된 지붕 없는 헛간의 흔들리는 서까래처럼 섬뜩하게 튀어나왔다. 또한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눈빛은 눈 구멍에 깊숙이 가라앉아, 깊은 우물에 멀리 가라앉은 물빛으로 보았다. 또한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머리가죽은 주름지고 시들어서, 푸르고 맛이 쓴 호리병박이 바람과 햇빛에 주름지고 시든 것과 같았다. 또한 사리뿟따여,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창자가 나의 등에 붙어버려, 내가 창자를 만지면 등뼈가 만져졌고, 등뼈를 만지면 창자가 만져졌다. 또한 사리뿟따여,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내가 똥이나 오줌을 누려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또한 사리뿟따여,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내가 내 몸을 편하게 하기 위해 손으로 사지를 문지르면, 털이 뿌리까지 썩어서 몸에서 떨어져나갔다.
59.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고행을 했어도, 나는 인간의 상태를 뛰어 넘고, 고귀한 분에게 적합한, 탁월한 앎과 봄을 성취하지 못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직 고귀한 지혜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고귀한 지혜가 성취되어야, 그는 해탈에 이르게 되고, 그를 따르는 자를 완전한 괴로움의 소멸로 이끈다.
60. 사리뿟따여,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이와 같이 설하고, 이와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 ‘청정은 윤회를 통해서 온다.’ 사리뿟따여, 이 오랜 세월에 청정한 신들의 하느님 나라를 제외하고는 내가 일찍이 윤회하지 않은 윤회의 세계를 발견할 수 없다. 사리뿟따여, 그러나 내가 청정한 신들의 하느님 나라로 윤회한다면 나는 다시 이 세계에 올 수 없다.
61. 사리뿟따여,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이와 같이 설하고 이와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 ‘청정은 거듭 태어남을 통해서 온다.’ 사리뿟따여, 이 오랜 세월에 청정한 신들의 하느님 나라를 제외하고는 내가 일찍이 재생하지 않은 재생계를 발견할 수 없다. 사리뿟따여, 그러나 내가 청정한 신들의 하느님 나라로 재생하면 나는 다시 이 세계에 올 수 없다.
62. 사리뿟따여,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이와 같이 설하고 이와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 ‘청정은 주거를 통해서 온다.’ 사리뿟따여, 이 오랜 세월에 청정한 신들의 하느님 나라를 제외하고는 내가 일찍이 주거하지 않은 주거세계를 발견할 수 없다. 사리뿟따여, 내가 청정한 신들의 하느님 나라에서 주거하면 나는 다시 이 세계에 올 수 없다.
63. 사리뿟따여,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이와 같이 설하고 이와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 ‘청정은 제사를 통해서 온다.’ 사리뿟따여, 이 오랜 세월에 내가 귀족으로서 통치를 위임받은 왕이었을 때나 대가집의 바라문이었을 때에, 내가 일찍이 제사로서 지내지 않은 제사를 발견할 수 없다.
64. 사리뿟따여,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이와 같이 설하고 이와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 ‘청정은 불의 숭배를 통해서 온다.’ 사리뿟따여, 이 오랜 세월에 내가 일찍이 귀족으로서 권정왕이었을 때나 대가집의 바라문이었을 때에, 불로서 숭배하지 않은 불을 발견할 수 없다.
65. 사리뿟따여,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이와 같이 설하고 이와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 ‘만약 사람이 나이가 젊고 청년으로서 머리가 칠흑같고 젊음의 축복으로 가득 찬 인생의 초년기에는 최상의 총명한 지혜가 있다. 그러나 만약에 사람이 성장하여 노쇠하고 고령에 달하여,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나이가 들어 팔십세 혹은 구십세, 혹은 백세에 달하게 되면 그 총명한 지혜는 쇠퇴한다.’ 그러나 사리뿟따여, 그것은 그렇지 않다. 사리뿟따여, 나는 성장하여 노쇠하고 고령에 달하여,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나이가 팔십세가 되었다. 사리뿟따여, 내가 백세의 수명을 가지고 마음챙김과 보존과 상기와 총명한 지혜를 갖춘 네 명의 제자가 있다고 하자. 마치 잘 훈련되고, 실천되고, 검증되고, 숙련된 궁수가 종려나무잎의 그늘을 가로질러 가볍게 활을 쏘는 것처럼, 그들은 그 정도로 마음챙김과 보존과 상기와 총명한 지혜를 갖출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네 가지 마음챙김의 토대에 관해 묻고 또 물으면 그 물음에 따라서 나는 대답할 것이다. 내가 해설하면 그들은 기억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나, 대소변을 볼 때나, 잠자거나 피로하여 쉴 때를 제외하고는, 거듭해서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래도 사리뿟따여, 그 여래의 진리에 대한 가르침은 다함이 없고, 그 여래의 가르침의 언어도 다함이 없고, 그 여래의 문답도 다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네 명의 나의 제자들은 백세의 수명을 가졌지만, 그 백세를 끝으로 죽을 것이다. 사리뿟따여, 그대가 나를 침대로 옮기더라도, 거기서 여래의 총명한 지혜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66. 사리뿟따여, 누군가가 이와 같이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인간과 신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 세상을 불쌍히 여겨서 세상에 나타났다.’라고 올바로 말한다면, 그것은 나에 관해 이와 같이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인간과 신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 세상을 불쌍히 여겨서 세상에 나타났다.’고 올바로 말하는 것이다.
67. 그 때에 존자 나가싸말라가 세존의 등 뒤에 서서 세존께 부채를 부치고 있었다. 마침 존자 나가싸말라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놀라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예전에 없던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문을 듣고 온 몸에 털이 솟구칩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문을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나가싸말라여, 그대는 이 법문을 온 몸에 털이 솟구치는 법문으로 기억하라.”
68.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존자 나가싸말라는 만족하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를 받아 지녔다.
사자후에 대한 큰 경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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