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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왜 보시의 시대가 최후의 말법시대인가? 설조스님단식 16일차 7.5목요법회

moksha 2018. 7. 6. 23:42

 

왜 보시의 시대가 최후의 말법시대인가? 설조스님단식 16일차 7.5목요법회

 

 

마음속의 촛불을

 

촛불없는 촛불법회가 계속 열리고 있습니다. 설조스님 단식 16일째를 맞이 하여 7 5일 목요촛불이 조계사 일주문 맞으편 템플스테이 회관 앞에서 열렸습니다. 지난주 목요일 보다는 더 많은 이백 수십명 되는 것 같습니다.

 

스님들과 참석자들은 마음의 촛불을 켰습니다. 올해 나이 88세 노스님의 죽음을 각오한 단식에 사람들은 두 가지 발원을 했다고 봅니다. 하나는 하루 빨리 불교적폐가 청산되기를 발원한 것이고 또 하나는 노스님의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정의평화불교연대에서도 이날 열여덟 명 가량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개인적 수행으로 자기를 완성하고 사회적 실천으로 사회를 완성하는 이념을 가진 정평불의 참여는 당연한 것입니다. 불교인으로서 한국불교가 정법으로 더욱 더 발전하기를 기원 하는 마음으로 참석했습니다.

 

법회는 여법하게 진행됐습니다. 모든 법회가 그렇듯이 삼귀의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삼귀의문에서 승보와 관련하여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참석자들은 거룩한 승가에 귀의합니다.”라 했지만 운율에 잘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평법회에서는 거룩한 승보님께 귀의합니다.”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불보님께” “법보님께와 함께 운율에 맞아 무리가 없습니다.

 

이날 법회에서는 주로 발언 위주로 진행 되었습니다. 승가와 재가에서 번갈아 현재 문제점과 개선에 대하여 사자후를 토했습니다. 특히 포교사단에서 참여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서울지역 포교사단 소속 포교사들이 성명서를 낭독한 것입니다. 이제까지 어용으로 알려졌던 포교사단에 대한 반란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가사입은 도둑이

 

조계종의 문제는 승가의 문제입니다. 승가에 도둑이 들어 곳간을 털어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큰도둑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큰도둑은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집에 도둑이 들어 도둑이 주인이 되고 주인은 쫓겨난 형국입니다. 이런 모습이 현재 조계종의 현실입니다.

 

도둑이 들었으면 도둑을 쫓아 내야 합니다. 가사입은 도둑이 주인행세를 하며 곳간을 털어 갈 때 도둑이 무서워 하나 둘 떠나 갑니다. 그렇게 떠나 간 불교인이 삼백만명입니다. 한국불교는 온통 도둑들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출가부적격자들이 너무 많다

 

승가의 도둑은 옛날에도 있었습니다. 출가해서는 안될 자들이 출가한 것이 큰 이유라 봅니다. 율장대품에 따르면 출가부적격자들이 있습니다. 이를 유형별로 보면 가장 첫 번째로 다섯 가지 질병에 감염된 자들입니다. 이는 나병, 종기, 습진, 폐병, 간질 등을 말하는데 질병의 치유 목적으로 출가한 자들입니다.

 

이밖에도 출가해서는 안될 사람은 많습니다. 왕의 신하, 강도, 감옥문을 부순 도적, 방부에 적혀 있는 도적, 태형을 당한 자, 낙인형을 당한 자, 빚 진 도둑, 노예, 삭발자, 생계형아동, 열다섯미만의 소년 등 입니다.

 

오늘날 한국불교가 이렇게 타락하고 망가진 것은 출가해서는 안될 출가부적격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일반사람들의 평균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들이 가사를 걸치고 있을 때 도둑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오늘날뿐만 아니라 부처님 당시에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도둑 같은 비구

 

초기경전 중에 테라가타와 테리가타가 있습니다. 장로게와 장로니게라고도 합니다. 부처님의 제자들이 해탈과 열반의 기쁨을 노래한 게송입니다. 그런데 게송을 보면 그때 당시 도둑 같은 비구를 통렬히 비판하는 게송도 보입니다. 뿟싸장로의 삼십련시집이 그것입니다. 일부를 소개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분노하고, 원한에 차고, 위선적이고,

완고하고, 교활하고, 질투하고,

또한 다른 의견을 가진 자들이

다가오는 미래에는 많을 것이오.(Thag.952)

 

“세상에 많은 위험이

다가오는 미래에 나타나리니,

잘 설해진 가르침을

어리석은 자들이 오염시키리라. (Thag.954)

 

“덕성이 열악함에도

두려움 없이 떠드는

수다스럽고 배운 것이 없는 자들이

참모임에서 힘을 얻게 되리라. (Thag.955)

 

“덕성이 갖추어졌고

의취에 맞게 말하고

부끄러움을 알고, 욕망을 여읜 님들은

참모임에서 힘을 잃게 되리라. (Thag.956)

 

“금화와 황금 그리고

전지와 택지, 염소와 양,

남자노비와 여자노비를

미래에 어리석은 자들이 받아들이리라. (Thag.957)

 

어리석어 분개하기 쉽고

계행에 집중하지 못하는 자들이

쟁투를 좋아하는 짐승이 되어

허세를 부리게 되리라.” (Thag.958)

 

 

뿟싸장로는 미래를 예언한 것처럼 보입니다. 미래 어느 때인가 가르침이 크게 후퇴했을 때 승가에 나타나는 징조를 마치 예견하듯이 노래한 것입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도둑입니다.

 

노랑가사 입을 자격이 없다

 

승가에 도둑이 들면 도둑의 소굴이 될 것입니다. 무지한 신도들 위에 군림하며 재산을 축적하며 소유하려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흰옷 입은 일반사람과 다름 없게 됩니다.

 


우쭐하고, 푸른 옷을 입고,

기만적이고, 완고한 자들이

수다스럽고, 사특하게

고귀한 자처럼 돌아다니리라.” (Thag.959)

 

부드러운 기름을 머리에 바르고

세안제를 양 눈에 바른 가벼운 자들이

상아 빛깔의 옷을 입고,

수레가 다니는 길거리를 다니리라.” (Thag.960)

 

흰옷을 탐하는 자들은

해탈한 님들이 싫어하지 않는, 잘 염색된,

거룩한 님의 깃발인

황색가사를 싫어하여 떠나게 되리라.” (Thag.961)

 

이득을 얻기를 욕망하고,

나태하고, 정진이 없는 자들은

숲속의 생활을 싫어하니,

마을에서 살고자 하리라.” (Thag.962)

 

자제함이 없이 어울리며

교제하리니, 그들은

항상 삿된 생활을 즐기며

이득을 얻는 자를 좇으리라.” (Thag.963)

 

이득을 추구하지 않으면,

공경하지 공경하지 않을 것이니,

아주 훌륭하더라도, 그때에 그들은

현자로 섬기지 않으리라.” (Thag.964)

 

구리빛으로 물들인

자신의 깃발을 비난하고

어떤 자들은 이교도의

흰색 깃발을 착용하리라.” (Thag.965)

 

그때 그들은 가사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고,

수행승들 사이에서도

가사에 대한 성찰이 없으리라.” (Thag.966)

 

 

가사는 수행승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계행을 지키지 않는 자에 대하여 가사를 입을 자격조차 없다.”(Thag.969)라 했습니다. 마치 세속의 사람처럼 소유하고 이교도처럼 행위하는 그들은 더 이상 부처님의 제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뿟싸 장로는 이렇게 게송으로 일갈했습니다.

 

 

교만하고, 허세를 부리고

어리석고, 계행이 없는 자에게는

흰옷이 어울리지

어찌 가사가 어울리겠는가?”(Thag.966)

 

 

부처님 당시 노랑가사는 수행승의 상징이었습니다. 노랑가사를 입고 행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습니다. 머리를 삭발하고 노랑가사를 입은 수행승은 표가 나기 때문에 계행을 어겼을 때 일반사람들의 비난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 뿟싸장로는 계행을 지키지 않는 수행승에게 세속에서나 입는 흰옷이 더 나을 것이라 했습니다.

 

왜 보시의 시대가 최후의 말법시대인가?

 

계행을 지키지 않는 자는 비구라 볼 수 없습니다. 흰옷 입은 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뿟싸장로는 미래 시기에 최후의 시대가 다가오면 수행승들과 수행녀들의 행실이 이와 같으리라.(Thag.977)라 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가르침의 흔적만 남은 말법 시대를 말합니다.

 

한국불교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도둑들은 오늘도 곳간을 털어가고 있습니다. 테라가타 주석(ThagA.III.89)에 따르면 다섯 가지 시대가 있습니다. 해탈의 시대, 삼매의 시대, 계행의 시대, 학습의 시대, 보시의 시대입니다. 지금은 보시의 시대입니다.

 

왜 보시의 시대가 최후의 말법시대인가? 주석에 따르면 학습의 시대부터가 말법의 시대라 합니다. 계행이 무너지고 학습에만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학습의 시대마저 사라지면 가르침은 흔적만 남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수행승들이 재물을 모아서 보시로서 베푸는 시대가 됩니다.

 

종종 어느 스님이 통 크게 수억원을 기부했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의문이 생겨납니다. 대체 일을 하지 않는 스님이 어떻게 큰 돈을 모았을까라는 의심입니다. 그런데 테라가타 주석에 따르면 다섯 시대 중에 최후의 시대가 보시의 시대라 했는데 딱 들어 맞는 말입니다.

 

말법시대가 되면 계행도 후퇴하고, 학습도 후퇴하고 남은 것은 그동안 축적된 재산 밖에 없습니다. 그 재산을 신도들에게 보시하는 기가 막힌 시대가 됩니다. 가르침이 완전히 사라진 시대입니다.

 

경전독송모임이 이곳저곳에 생겨나야

 

흔히 절에 가면 스님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열심히 기도하세요!”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말은 기복을 조장하는 것이 됩니다. 신도들이 자신과 거족의 안위만을 기도했을 때 신도들은 점차로 무지해 질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성직자의 권위는 자꾸만 높아져 갈 것입니다.

 

성직자가 각종 기도로 막대한 부가 축적 되었을 때 성직자는 재가자뿐만 아니라 이웃과 사회를 위여 보시를 하게 될 것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매수도 해당됩니다. 사실상 일반세속인과 다름 없습니다. 그래서 흰옷을 탐하는 자들이라 했고 황색가사를 싫어하여 떠나게 되리라.”(Thag.961)라고 했습니다.

 

한국불교가 발전하려면 재가불자가 깨어 나야 합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기도 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 못지 않게 교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처님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하고, 부처님 그분이 어떤 말씀을 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한국불교는 기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초기경전을 접하여 부처님 그분이 어떤 말을 했는지 알아야 하고 논장을 접하여 교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경전독송모임이 이곳저곳에 생겨나야 합니다. 경전을 읽고 서로 토론하여 부처님과 가르침을 알게 되었을 때 기복은 발붙이지 못할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도둑들도 사라질 것입니다.

 






2018-07-06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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