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3번)
나모 땃싸 바가와또 아라하또 쌈마쌈붓닷싸 (3번)
그 분, 세상의 존귀한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께 예경하나이다.
코끼리 자취에 비유한 작은 경(Cūlahatthipadopamasuttaṃ, MN.27) (2)
27. 그는 이 고귀한 여러 계율을 갖추고 이 고귀한 감각능력을 수호하여 갖추고, 이 고귀한 올바른 앎을 갖추고, 한적한 숲, 나무아래, 산, 계곡, 동굴, 묘지, 숲속, 확트인 곳, 짚더미가 있는 곳과 같은 고독한 처소를 벗으로 삼습니다.
28. 그는 식후에 탁발에서 돌아와, 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우고, 얼굴 앞으로 새김을 일으킵니다.
1)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탐욕을 여읜 마음으로 지내며, 탐욕에서 마음을 정화시킨다.
2) 세상에 대한 분노를 버리고 분노를 여읜 마음으로 지내며, 모든 뭇 삶을 가엾게 여기며, 분노에서 마음을 정화시킨다.
3) 해태와 혼침을 버리고 해태와 혼침을 떠나서 빛을 지각하고 깊이 새기고 올바로 알아서 해태와 혼침에서 마음을 정화시킨다.
4) 흥분과 회한을 버리고 차분하게 지내며, 안으로 마음을 고요히 하여, 흥분과 회한으로부터 마음을 정화시킨다.
5) 의심을 버리고 의심을 극복하여 착하고 건전한 것에 의혹을 품지 않고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한다.
29. 그리고
1) 그는 이들 다섯 가지 장애, 즉 지혜를 허약하게 만드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어, 멀리 떠남에서 생겨난 희열과 행복을 갖춘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여래의 자취라고 하고 여래의 흔적이라 하고 여래의 표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거룩한 제자는 ‘세존께서는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자이고, 가르침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참모임은 잘 실천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2) 바라문이여, 다시 수행승은 사유와 숙고를 멈춘 뒤, 안으로 고요하게 하여 마음을 통일하고, 사유를 뛰어넘고 숙고를 뛰어넘어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춘 두 번째 선정을 성취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여래의 자취라고 하고 여래의 흔적이라 하고 여래의 표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거룩한 제자는‘세존께서는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자이고, 가르침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참모임은 잘 실천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3) 바라문이여, 다시 수행승은 희열이 사라진 뒤, 아직 신체적으로 즐거움을 느끼지만, 깊이 새기고 올바로 알아차리며 평정하게 지낸다. 그래서 고귀한 이들이‘평정하고 새김이 깊고 행복을 느낀다.’고 말하는 세 번째 선정을 성취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여래의 자취라고 하고 여래의 흔적이라 하고 여래의 표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거룩한 제자는‘세존제서는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자이고, 가르침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참모임은 잘 실천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4) 바라문이여, 다시 수행승은 행복을 버리고 고통을 버려서, 이전의 쾌락과 근심을 사라지게 하고, 괴로움을 뛰어넘고 즐거움을 뛰어넘어, 평정하고 새김이 깊고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성취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여래의 자취라고 하고 여래의 흔적이라 하고 여래의 표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거룩한 제자는‘세존께서는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자이고, 가르침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참모임은 잘 실천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30.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 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그는 마음을 전생의 삶에 대한 관찰의 지혜로 향하게 합니다. 이와 같이 그는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기억합니다. 예를 들어 ‘한 번 태어나고 두 번 태어나고 세 번 태어나고 네 번 태어나고 다섯 번 태어나고 열 번 태어나고 스무 번 태어나고 서른 번 태어나고 마흔 번 태어나고 쉰 번 태어나고 백 번 태어나고 천 번 태어나고 십만 번 태어나고, 수많은 세계가 파괴되고 수많은 세계가 생성되고 수많은 세계가 파괴되고 생성되는 시간을 지나면서, 당시에 나는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성을 지니고 이러한 용모를 지니고 이러한 음식을 먹고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보고 이러한 목숨을 지녔고, 나는 그 곳에서 죽은 뒤에 나는 다른 곳에 태어났는데, 거기서 나는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성을 지니고 이러한 용모를 지니고 이러한 음식을 먹고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보고 이러한 목숨을 지녔었다. 그 곳에서 죽은 뒤에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그의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상세히 기억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여래의 자취라고 하고 여래의 흔적이라 하고 여래의 표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거룩한 제자는 ‘세존께서는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자이고, 가르침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참모임은 잘 실천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31.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 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그는 마음을 뭇 삶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관찰의 지혜로 향하게 합니다. 이와 같이 그는 청정한,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뭇 삶들을 봅니다.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업보에 따라서 등장하는 뭇 삶들을 봅니다. 어떤 뭇 삶들은 몸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입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마음으로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고귀한 분들을 비난하고 잘못된 견해를 지니고 잘못된 견해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납니다. 그러나 다른 뭇 삶들은 몸으로 선행을 하고 입으로 선행을 하고 마음으로 선행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고귀한 분들을 비난하지 않고 올바른 견해를 지니고 올바른 견해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육체가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그는 청정한,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뭇 삶들을 볼 것입니다.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업보에 따라서 등장하는 뭇 삶들을 봅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여래의 자취라고 하고, 여래의 흔적이라 하고, 여래의 표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거룩한 제자는 ‘세존께서는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자이고, 가르침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참모임은 잘 실천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32.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 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그는 마음을 번뇌의 소멸에 대한 관찰의 지혜로 향하게 합니다. 그는‘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이것이 번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발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압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여래의 자취라고 하고 여래의 흔적이라 하고 여래의 표시라고 합니다. 거룩한 제자는 미처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으나 이제‘세존께서는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자이고, 가르침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참모임은 잘 실천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33.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을 때, 그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하고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합니다. 해탈하면 그에게‘나는 해탈했다.’는 앎이 생겨납니다. 그는‘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은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는 일이 없다.’라고 분명히 압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여래의 자취라고 하고 여래의 흔적이라 하고 여래의 표시라고 합니다.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세존께서는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자이고, 가르침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참모임은 잘 실천하고 있다.’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바라문이여, 이렇게 코끼리 자취의 비유가 상세히 원만하게 설해졌습니다.”
34. 이렇게 말씀하시자 바라문 자눗쏘니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예전에 없었던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이,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이,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올리듯이,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재가신자로서 저를 받아주옵소서. 오늘부터 목숨 바쳐 귀의하겠습니다.”
코끼리 자취에 비유한 작은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