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의자왕 11년(651) 보덕이 창건하고 신라 말 도선이 중창을 한 후 충렬왕 24년(1298) 무기. 조선후기 무학이 중창하고 고종 3년(1866) 관찰사 심상훈이 중창하면서 신원사로 개칭 후 1876년 보연이 중건하였다.
신원사는 계룡산에 위치한 4대 사찰 중 남쪽에 있는 사찰로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전각 중 대웅전 향각, 영원전 대방 및 요사채를 복원하였으며, 향각에는 명성황후가 봉안했다는 불상이 전해진다. 그 외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오층석탑과 부도 및 계룡산 중악단이 사찰로부터 50m거리에 위치해 있다. 신축된 대웅전은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모시고 협시불로 대세지보살 및 관음보살을 두고 있으며, 중악단은 조선시대 전형적인 산신제단으로 궁궐 건축양식을 하고 있다.
계룡산 연천봉 자락에 있는 신원사의 임진왜란으로 사찰 전각이 소실되자 위치를 옮겨 중창을 하였는데 본래 위치는 중악단 남쪽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금당지로 추정되는 곳에 오층석탑이 세워져 있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불교유적으로 신원사노사나불괘불탱(국보 제299호), 신원사오층석탑(충남시도유형문화재 제31호), 신원사대웅전(충남시도유형문화재 제80호), 계룡산중악단(보물 제1293호)등이 있다.
계룡산 중악단 초입
계룡산 중악단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년(1394) 처음 제를 지내기 시작한 중악단은 국가에서 직접 산신에게 제를 올리는 공간으로 신라 당시 5악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북쪽에 묘향산을 상악으로, 남쪽에는 지리산을 하악으로, 중앙에는 계룡산을 중악으로 단을 만들고 산신에게 제를 지내던 곳이다. 산신에게 제를 지내는 제단은 효종 2년(1651) 일시 폐지되었다가 고종 16년(1879) 명성황후에 의하여 다시 재계되어 중악단을 짓고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1917)가 쓴 것이라 전하며, 내부 중앙 뒤쪽에 단을 설치하고 단 위에 나무상자를 올려 계룡산신의 신위와 영정을 모셔 두고 있다.
중악단의 건물은 유교의 사당형식을 기본으로 하고 들어서는 입구의 대문채와 중문채는 대가집의 주택형식을 하며. 본전 건물은 불교 법당 형식이며 지붕은 궁궐건물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당시 모든 건축수법이 동원되어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낸 국내 유일의 특이한 건물이다.
신원사 경내로부터 떨어진 산신제단인 중악단 남쪽에 있는 석탑으로 현재 4층 지붕돌까지만 남아 전해지나 본래는 2층 기단 위 5층 탑신을 올린 오층석탑으로 탑 서쪽 앞에는 배례석이 갖추어져 있는 고려시대 작품으로 1957년 12월 해체복원을 통해 탑신 1층 몸돌에서 사리구장치와 개원통보, 황송통보, 함원통보, 파손이 심한 자기로 만든 주전자, 녹색유리로 만든 병을 수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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