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의 주력(呪力)과 남방의 빠릿따[수호주(守護呪)]에 대한 고찰
무념스님 글
주력은 주문을 암송하는 수행이다. 주문은 힌두교에서는‘만트라(Mantra)’라고 부르고 불교에서는‘진언(眞言), 다라니(陀羅尼, dharani)’라고 부른다.‘만트라’를 끊임없이 외우는 주력은 인도의 베다시대부터 널리 행해지는 수행이다. 아마 힌두교뿐만이 아니고 모든 종교에 주문이 있다. 기독교에도‘기도주문’이 있고, 우리나라 전통 종교에도‘시천주, 태을주’를 비롯해서 많은 주문이 있다. 아마도 무당과 같은 비종교일수록 주문이 더 많을 것이다. 주문은 이제 종교의 영역을 넘어서 문학과 영화에까지 진출했다. 헤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사들은 주문을 외우고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난다.
대승불교에도 많은 주문이 있다. 불자들이 주로 외우는 진언은 신묘장구 대다라니, 능엄신주, 광명진언 등이다. 숭배의 대상이 되는 수많은 보살마다 각기 진언이 있다. 관세음보살 본심미묘진언, 지장보살 츰부다라니, 문수보살 법보장 다라니, 보현보살 선다라니 등 무수히 많은 보살의 다라니가 있다. 불공의식, 제사의식 등과 모든 의식에도 무수히 많은 주문이 등장한다. 심지어 변소에 가서 큰일을 볼 때에도 주문이 있으니 모든 행위에는 거기에 맞는 주문을 외워야 할 판이다.
주문을 외우는 수행은 왜 이리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일까? 아마도 신비감 때문일 것이다. 주력수행을 권하는 스승들은 과장광고를 서슴없이 해댄다. 주력을 하면 재앙이 물러가고, 재난을 예방하며, 업장이 소멸되고, 복덕을 얻고, 신통이 생기며, 깨달음까지 성취할 수 있다고 선전한다. 깨달음이라는 단어까지 나왔다면 광고에 등장할 수 있는 모든 언어가 다 동원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힌두교는 만트라 천국이다. 인도인들은 신비로운 것을 좋아하고 또 허풍이 심한 민족이다. 힌두교인들이 가장 많이 외우는 주문이 가야트리 만트라(Gayatri mantra)라고 한다. 이 만트라는 ‘베다 만트라’ 중에서도 중요한 주문으로, 가야트리는 베다의 어머니, 우주의 어머니이며, 지혜의 여신으로 무지를 없애준다고 하고, 고통과 재앙을 제거되고 해탈을 얻게 하며, 혼란과 의심, 회의주의, 자신감 부족, 방향감각 상실 등을 치료하며 부와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불교나 힌두교나 과대광고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다. 요즈음은 만트라(주문)를 과학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파동건강, 파동음악, 파동경영이라는 것으로 소리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의학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시험관에 암세포와 일반세포를 넣고‘훔(hum)’이라는 소리를 쏘아주었더니 암세포는 죽고 일반 세포는 더 건강하게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소리에서 생명체에 질서를 부여하고 조율하는 힘이 있으며 이 힘을 이용하면 가장 훌륭한 처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문의 소리가 매우 민감한 파동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트라 음악이라는 것도 등장하였다. 만트라 음악이 하나의 장르로까지 발전하지 않았지만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으며, 불교문구점에 가면 쉽게 CD를 구할 수 있다. 티벳의 묵직한 저음으로 노래하는‘옴 마니 파드메 훔’과 대만의‘아미타파송’, 남방의‘자비송’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스님들이 염불 테이프도 이의 범주에 집어넣을 수 있겠다. 이런 음악이 명상음악이라는 장르로까지 발전하여, 들으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게 한다.
주문은 좋은 소리를 내고, 좋은 소리는 좋은 파장을 일으키고, 좋은 파장은 세포를 활성화시킨다. 주문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영향을 미친다.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고 편안하게 해준다. 어머니가 자장가를 부르면 아기는 포근하게 잠이 든다. 어머니의 자장가는 아기를 잠재우는 신비한 주문이다. 농부들이 함께 농부가를 부르며 모내기를 하면 활기가 넘치고 피곤한 줄 모른다. 농부가는 농부들의 힘을 돋우는 신비한 주문이다.
양봉가들이 봄에 분봉(分蜂)을 할 때, 집 밖으로 나온 벌들을 다시 벌통에 쓸어 담으면서 외우는 주문이 있다고 한다.
“니캉내캉 살자. 오순도순 살자.”
그러면 벌들은 고분이 다시 새로운 벌통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이 주문은 양봉가들이 필히 알아두어야 할 주문이다.
자, 그러면 과학적으로 경험적으로 밝혀진 것들, 즉 세포를 활성화시키고, 마음을 달래고, 안정을 가져다주며,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이런 효과들 말고, 종교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효력들, 업장소멸, 재난 예방, 복덕 증진, 신통 성취, 깨달음이라는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붓다께서 정말로 이런 신비스런 주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고, 실제로 신비스런 주문을 가르치셨을까?
디가 니까야에는 께왓다 경(Kevaddha Sutta, D11)에 주문에 대한 기록이 있다.
날란다에 사는 께왓다라는 재가불자가 붓다에게 스님들이 신통을 나투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청했다. 스님들이 신통을 보이면 많은 사람들이 경이로운 기적을 보고 불교로 개종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붓다께서는 께왓다의 청을 거절하셨다. 스님들이 신통변화의 기적(神足通)을 보이면 이교도들은 ‘간다리(gandhāri)라는 주문을 외워 신통을 부린다.’라고 말할 것이고, 남의 마음을 아는 기적(他心通)을 보이면, 이교도들은 ‘마니까(maṇikā)라는 주문을 외워 그렇게 신통을 보인다.’라고 말할 것이므로, 사람들이 신통을 보고 청정한 믿음을 내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재미있는 서커스 구경하듯이 할 것이라는 말씀이셨다.
불교는 그런 세속적인 흥밋거리를 위한 가르침이 아니며 오직 깨달음을 추구하는 출세간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경전에는 삼매를 성취하면 신통을 개발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삼매를 성취하지 않고 주문을 외워도 신통을 부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주문을 외워 신통을 부리는 것은 세속적인 것이며 출세간적인 것이 아니다. 삼매는 마음의 집중력을 기르는 출세간의 길이지만 통찰지를 개발하여 도과를 성취하기 위한 중간 단계의 과정이며 목표가 아니다. 영화속에서 보면 현대는 변종인간(뮤턴트)들이 신통을 부리는 코미디 같은 세상이다.
이 경에 의하면 붓다께서는 주력 수행으로 신통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신 셈이다. 하지만 이 경에서 붓다께서는 주문을 외우는 것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붓다의 원음으로 알려진 초기불교 경전에는 주력으로 신통을 부리는 것 말고 재앙을 물리치고, 복덕을 얻고, 업장이 소멸되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언급은 없다.
붓다의 가르침, 즉 담마의 특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와서 보라고 할 수 있고, 지혜로운 자들이 스스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붓다의 가르침에 알 수 없는 언어로 된 주문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럼 남방불교에서 불자들이 지송하는 빠릿따(수호주ㆍ보호주)는 무엇인가?
남방불교의 빠릿따[paritta, 수호주(守護呪) 또는 수호경(守護經)]는 사실 주문이라기보다는 마음을 닦는 가르침이다. 붓다께서 신비스런 효력을 가진 주문이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고 상윳따 니까야(상응부), 앙굿따라 니까야(증지부), 맛지마 니까야(중부), 숫따니빠따(경집) 등에서 뽑은 경전의 문구이다. 이 경전을 외우면 병이나 재난을 피하는 효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나약한 인간들은 무언가 자신을 보호하는 신비스런 주문을 좋아한다. 그래서 남방의 옛 스승들은 신도들을 위해 붓다의 가르침 중에서 늘 마음에 새기고 외우면 삶에 도움이 되는 문장을 경에서 뽑아 보호주를 만들었다.
빠릿따는 각 나라마다 다르고 사원마다 다른데 미얀마에서는 대체로 11가지 빠릿따를 암송한다. ⓛ 행복경(Maṅgala Sutta, Sn2.4) ② 보배경(Ratana Sutta, Sn2.1) ③ 자애경(Metta Sutta, Sn1.8) ④ 칸다 호주(Khandha paritta, 몸의 보호경, A.ii.72) ⑤ 모라 빠릿따(Mora paritta, 공작 경, J159) ⑥ 왓따 경(Vaṭṭha Sutta, 메추라기 경) ⑦ 깃발 호주(Dhajagga paritta, S11.3) ⑧ 아따나띠야 경(Aṭānāṭiya Sutta, D32) ⑨ 앙굴리말라 호주(Aṅgulimāla paritta, M86) ⑩ 칠각지 호주(Bojjaṅga paritta) ⑪ 뿟반하 경(Pubbaṇha Sutta, 아침 경, A.i.294)이다.
이들 빠릿따는 알 수 없고 신비스런 고대문자가 아니다. 알 수 없는 언어를 웅얼거리면 신비한 힘이 나오는 신령스런 주문이 아니다. 정반대로 내용을 알지 못하고 외우면 아무 효력이 없다. 가장 많이 외우는 자애경을 예를 들어보겠다. 아래는 자애경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ditthā vā ye va aditthā, ye va dūre vasanti avidūre
딧타 와 예 와 아딧타 예 와 두레 와산띠 아위두레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bhūtā va sambhavesi va sabbasattā bhavantu sukhitattā.
부따 와 삼바웨시 와 삽바삿따 바완뚜 수키땃따
이미 생겨났거나 생길 것이거나,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기를.
입으로 빨리어를 외운다.(사실 빨리어보다 직접 번역된 언어로 외우면 더 효력이 있다.) 그러면서‘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중생들, 멀거나 가까이 있는 모든 중생들, 태어났거나 태어날 모든 중생들’을 마음으로 심상화하고서 그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연상하며 이 게송을 외우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 자신의 마음이 편안하고 포근해지고 자비로워진다. 이 자비로운 마음의 힘(念力)이 주위로 퍼져나간다.
주위에 사는 중생들, 사람, 짐승, 사나운 맹수일지라도 자비로운 염력(念力)의 영향을 받아 마음이 평화롭고 고요해지고 자비로워진다. 그러면 그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던 사람이나 짐승들이 도리어 그를 보호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자비의 힘이며 자신을 보호하고,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을 보호하는 보호주문이다.
이 주문만 외우면 세상에 전쟁이 일어날 이유가 없고, 광기에 찬 저주를 하며 남의 종교를 헐뜯는 종교분쟁도 일어날 수 없다.
행복경, 보배경 등도 마찬가지이다. 모르고 외우면 효력이 없고, 내용을 알고 외우고 실천해야만 영험이 있다. 반대로 대승의 주문들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해석이 가능한 주문도 있지만 일부로 해석하지 않는다. 무슨 뜻인지 모르고 암송해야 영험이 있으며 내용을 알게 되면 오히려 효력을 상실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주문의 신비감이 사라질까봐 그러는 것일까? 이것이 현교와 밀교의 차이다.
붓다는 기성종교였던 바라문교의 모든 가르침을 배웠지만 그 종교의 배타성과 신비성을 철저히 부정하고 합리적인 사유에 기초한 현실주의적인 가르침을 전했다. 바라문교에서 행해지는 제사, 주술, 점성술과 같은 세속적인 행위를 금하고 오직 계ㆍ정ㆍ혜를 닦아 깨달음을 추구하는 출세간의 성스런 길을 갈 것을 권했다.
그러나 대승은 중생들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원융무애’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방편’이라는 이름으로 붓다의 훈계를 무시하고, 주력이야말로 붓다의 비밀스런 가르침이며, 본마음을 나타내는 진언[본심미묘진언(本心微妙眞言)]이라고 과대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비 삼매를 성취하여 마음에 자비심으로 충만해지면 맹수조차도 감화를 받아 온순해지고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이 긴장하고 경계하고 날카로운 살기를 일으키면 온순한 동물조차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긴장하며 적대감을 드러내며 해치려고 든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자비롭고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을 가지면 상대방도 따스한 기운을 느끼고 자비롭고 편안하게 대한다. 내가 분노하고 껄끄럽게 여기고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상대방도 그 날카로운 기운을 느끼고 분노하고 껄끄럽게 여기고 화를 낸다. 그러므로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주문을 외우는 것이 아니고 수행을 통해 자비 삼매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덕을 증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문을 외우는 것이 아니고, 불쌍한 사람을 돕고, 성인을 공경하고 공양 올리며, 공덕을 쌓는 것이다.
업장을 소멸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깨달음을 성취하여 더 이상 업을 짓지 않고 영원히 업에서 자유로운 아라한과를 성취하는 것이다. 아라한과가 힘들다면 적어도 수다원과라도 성취하는 것이다.
어떤 신적인 존재가 그대를 돌보아 줄 거라고 믿지 말고, 모든 것은 항상 변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가진 것에 만족하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고, 늘 마음 챙기면 그것이 최상의 주문이다. 항상 마음 챙기는 것이 최상의 주문이다. 왜냐하면 마음 챙김이 그대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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