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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도들에 대한 경(Aññatitthiyasuttaṃ, S12:24) : 업에 대한 4가지 잘못된 견해

moksha 2017. 8. 28. 14:15

이교도들에 대한 경(Aññatitthiyasuttaṃ, S12:24)

 

1. 한 때 존자 싸리뿟따가 라자가하 시의 벨루 숲1에 있었다. 그 때 존자 싸리뿟따가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탁발을 하기 위해 라자가하 시로 들어갔다.

 

2. 그런데 그 때 존자 싸리뿟따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라자가하 시에서 탁발을 행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오히려 이교도 유행자들이 머무는 정사가 있는 곳으로 가보면 어떨까?’

 

3. 그래서 존자 싸리뿟따는 이교도 유행자들이 머물고 있는 정사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그 이교도 유행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주고 받은 뒤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 쪽으로 물러나 앉은 존자 싸리뿟따에게 이교도 유행자들이 이와 같이 말했다.

 

4. [유행자들] “벗이여 싸리뿟따여, ①업보를 믿는 자2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벗이여 싸리뿟따여, ②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벗이여 싸리뿟따여, ③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벗이여 싸리뿟따여, ④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있습니다.3

 

5. 그런데 벗이여 싸리뿟따여, 여기에 대하여 수행자 고따마는 어떻게 말씀하시며 어떻게 설명하십니까? 우리가 만약 수행자 고따마께서 말씀하신 바를 설한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설한 것이고, 진실이 아닌 것으로 세존을 잘못 대변한 것이 아니며, 가르침에 일치하도록 설명한 것이고, 우리의 주장의 결론이 비판의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 것입니까?”

 

6. [싸리뿟따]벗들이여, 세존께서는 괴로움은 연유가 있어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연유로 해서 생겨납니까?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납니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을 말한다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설하는 것이고, 진실이 아닌 것으로 세존을 잘못 대변한 것이 아니며, 가르침에 일치하도록 설명하는 것이고, 그대들의 주장의 결론이 비판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7. 벗들이여,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생겨납니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남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생겨납니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생겨납니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생겨납니다.

 

8. 벗들이여,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습니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습니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습니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고 나이 만든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습니다.”

 

9. 그 때 마침 존자 아난다가 존자 싸리뿟따와 이교도 유행자들 사이의 대화를 들었다. 그리고 나서 존자 아난다는 탁발을 하러 라자가하 시로 들어가 탁발을 하고 식사를 마친 뒤, 탁발에서 돌아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아 존자 아난다는 존자 싸리뿟따와 이교도 유행자들의 대화를 모두 세존께 말씀드렸다.

 

10. [세존]아난다여, 훌륭하다. 아난다여, 훌륭하다. 싸리뿟따가 올바로 설명한 것과 같이 설명해야 한다. 아난다여, 괴로움은 연유가 있어 생겨나는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무엇을 연유로 해서 생겨 나는가?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이와 같이 말한다면, 내가 말한 대로 설하는 것이고, 진실이 아닌 것으로 나를 잘못 대변한 것이 아니며, 가르침에 일치하도록 설명하는 것이고, 그 주장의 결론이 비판의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11. 아난다여,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12. 아난다여,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다.

 

13. 아난다여, 한 때 나는 라자가하 시의 벨루 숲에 있는 깔란다까니바빠4에서 지냈다. 그 때 아난다여, 나는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탁발을 하기 위해 라자가하 시로 들어갔다.

 

14. 그런데 아난다여,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라자가하 시에서 탁발을 행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오히려 이교도 유행자들이 머무는 정사가 있는 곳으로 가보면 어떨까?’

 

15. 그래서 아난다여, 나는 이교도 유행자들이 머물고 있는 정사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그 이교도 유행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주고받은 뒤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 쪽으로 물러나 앉은 나에게, 아난다여, 그 이교도 유행자들이 이와 같이 말했다.

[유행자들] ‘벗이여, 존자 고따마여,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벗이여, 존자 고따마여,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벗이여, 존자 고따마여.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벗이여, 존자 고따마여,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에 관해 존자 고따마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며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만약 존자 고따마께서 말씀하신 대로 설한 것이고, 진실이 아닌 것으로 존자 고따마를 잘못 대변한 것이 아니며, 가르침에 일치하도록 서명한 것이고, 우리의 주장의 결론이 비판의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 것입니까?’


16. 그래서 아난다여, 나는 그 이교도 유행자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세존] ‘벗들이여, 괴로움은 연유가 있어 생겨나는 것이다. 무엇을 연유로 해서 생겨났는가?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이와 같이 말한다면, 내가 말한 대로 설한 것이고, 진실이 아닌 것으로 나를 잘못 대변한 것이 아니며, 가르침에 일치하도록 설명하는 것이고, 그대들의 주장의 결론이 비판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벗들이여,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벗들이여,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다. 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접촉이 없이 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여지는 없다.”

 

17. [아난다]세존이시여, 참으로 한마디 말로 모든 뜻을 말씀하신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예전에 없던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 사실을 상세하게 설명한다면, 그것은 깊고도 깊어서 실로 심원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세존] “그렇다면 아난다여, 여기서 밝혀 보아라.”

 

18. [아난다]세존이시여, 만약 누군가 저에게 '벗이여, 아난다여, 늙음과 죽음의 바탕은 무엇이고 동기는 무엇이며 발생은 무엇이고 원인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세존이시여, 그 질문에 저는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벗이여, 늙음과 죽음은 태어남을 바탕으로 하고 태어남을 동기로 하며 태어남을 발생으로 하고 태어남을 원인으로 한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은 질문에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19. 세존이시여, 만약 누군가 저에게 그런데 벗이여, 아난다여, 태어남의 바탕은 무엇이고 동기는 무엇이며 발생은 무엇이고 원인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세존이시여, 그 질문에 저는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벗이여. 태어남은 존재를 바탕으로 하고 존재를 동기로 하며 존재를 발생으로 하고 존재를 원인으로 한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은 질문에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20. 세존이시여, 만약 누군가 저에게 그런데 벗이여, 아난다여, 존재의 바탕은 무엇이고 동기는 무엇이며 발생은 무엇이고 원인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세존이시여, 그 질문에 저는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벗이여. 존재는 집착을 바탕으로 하고 집착을 동기로 하며 집착을 발생으로 하고 집착을 원인으로 한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은 질문에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21. 세존이시여, 만약 누군가 저에게 그런데 벗이여, 아난다여, 집착의 바탕은 무엇이고 동기는 무엇이며 발생은 무엇이고 원인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세존이시여, 그 질문에 저는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벗이여. 집착은 갈애를 바탕으로 하고 갈애를 동기로 하며 갈애를 발생으로 하고 갈애를 원인으로 한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은 질문에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22. 세존이시여, 만약 누군가 저에게 그런데 벗이여, 아난다여, 갈애의 바탕은 무엇이고 동기는 무엇이며 발생은 무엇이고 원인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세존이시여, 그 질문에 저는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벗이여. 갈애는 느낌을 바탕으로 하고 느낌을 동기로 하며 느낌을 발생으로 하고 느낌을 원인으로 한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은 질문에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23. 세존이시여, 만약 누군가 저에게 그런데 벗이여, 아난다여, 느낌의 바탕은 무엇이고 동기는 무엇이며 발생은 무엇이고 원인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세존이시여, 그 질문에 저는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벗이여. 느낌은 접촉을 바탕으로 하고 접촉을 동기로 하며 접촉을 발생으로 하고 접촉을 원인으로 한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은 질문에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24. 세존이시여, 만약 누군가 저에게 그런데 벗이여, 아난다여, 접촉의 바탕은 무엇이고 동기는 무엇이며 발생은 무엇이고 원인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세존이시여, 그 질문에 저는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벗이여. 접촉은 여섯 가지 감역을 바탕으로 하고 여섯 가지 감역을 동기로 하며 여섯 가지 감역을 발생으로 하고 여섯 가지 감역을 원인으로 한다.’

‘벗이여, 여섯 가지 감역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며,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5 등이 소멸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소멸한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은 질문에 저는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이교도들에 대한 경이 끝났다.


  1. 벨루바나(=죽림정사竹林精舍 웰루와나라마(Veḷuvanārāma)죽림(竹林, Veḷuvana) : 라자가하(Rājagaha, 왕사성王舍城)에서 북쪽으로 불과 560m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본문으로]
  2. 업보를 믿는 자(kammavāda) : ‘업설의 신봉자’는 모든 행위 즉 업은 좋건 나쁘건 그것에 합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현세에 영향을 끼치거나 내세에 그 영향을 끼친다고 하며 우리의 현세의 존재는 과거의 행위의 결과이라고 본다. [본문으로]
  3. ①자기원인설(自己原因說)은 영원불변의 자아(Ātman, atta)를 가정하여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는 주장이다. ②타자원인설(他者原因說)은 외부원인설로 시간(kāla), 신(神, iśuara), 자성(自性, suabhāva), 업(karma) 또는 운명(niyati) 등의 타자에 의해 괴로움이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③자타원인설(自他原因說)은 내적ㆍ외적 인과론에 소속되며 자이나교에서 주장하는 입장으로 다양한 원인(①과②를 포함)을 주장한다. ④비자비타설(非自非他說)은 어떠한 인과론도 부정하는 철저히 유물주의적인 것이다. [본문으로]
  4. 깔란다까니바빠(Kalandakanivāpa) : 웰루와나라마(Veḷuvanārāma, 죽림정사竹林精舍)를 말하는데, 다람쥐(Kalandaka)에게 먹이를 주는 곳(nivāpa)이었기 때문이다. 웰루와나라마((Veḷuvanārāma)를 웰루와나 수도원이라고도 하며, 한역하여 죽림정사(竹林精舍)라 하며, 라자가하(Rājagaha, 왕사성王舍城)에서 북쪽으로 불과 560m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칼란다카(Kalandaka) 장자로부터 죽림[竹林, 웰루와나(Veḷuvana)]을 희사받아 빔비사라(Bimbisāra) 왕이 정사(精舍)를 지어 부처님의 교단에 희사한 불교 최초의 사원이다. [본문으로]
  5. 빠알리(pāli)어는 소까빠리데와둑카도마낫수빠야사(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라는 복합어이다.여기서 소까(Soka)는 슬픔으로, 빠리데와(parideva)는 비탄, 둑카(dukkha)는 고통, 도마낫사(domanassa)는 근심, 우빠야사(upāyāsā)는 절망으로 표현되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