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고따마 붓다의 가르침/니까야(Nikāya) 항수 독송집

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Dakkhiṇāvibhaṇgasuttaṃ, M142) : 보시의 과보, 누구에게 보시해야하나

moksha 2016. 8. 15. 16:15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3번)

               나모     땃싸      바가와또    아라하또         쌈마쌈붓닷싸 (3번)

그 분, 세상의 존귀한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께 예경하나이다.

 

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Dakkhiṇāvibhaṇgasuttaṃ, M142)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싸끼야 국의 까삘라밧투에 있는 니그로다 승원에 계셨다.

2. 그 때에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한 벌의 새 법복을 가지고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 쪽으로 물러앉았다.

 

3. 한 쪽으로 물러 앉은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고따미“세존이시여, 이 한 벌의 새 법복은 특별히 세존을 위하여 제가 손수 짜고 손수 기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이것을 영납하시고, 애민히 여겨 받아주십시오.”이와 같이 말하자 세존께서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고따미여, 승단에 이것을 보시하십시오. 그대가 승단에 보시할 때에 곧 나와 승단을 공양하는 것이 됩니다.”

 

4.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다시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고따미]“세존이시여, 이 한 벌의 새 법복은 특별히 세존을 위하여 제가 손수 짜고 손수 기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이것을 영납하시고, 애민히 여겨 받아주십시오.”이와 같이 말하자 세존께서는 다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고따미여, 승단에 이것을 보시하십시오. 그대가 승단에 보시할 때에 곧 나와 승단을 공양하는 것이 됩니다.”

 

5. 세 번째에도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고따미]“세존이시여, 이 한 벌의 새 법복은 특별히 세존을 위하여 제가 손수 짜고 손수 기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이것을 영납하시고, 애민히 여겨 받아주십시오.”

이와 같이 말하자 존자 아난다가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6. [아난다]“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께서 지은 이 한 벌의 새 법복을 받아주십시오. 세존이시여,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이모이며, 양모이며, 양육자이며, 수유자로서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1) 세존이시여, 세존을 인연으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께서는 부처님에게 귀의하였고 그 가르침에 귀의하였고 참모임에 귀의하였습니다.

2) 세존이시여, 세존을 인연으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께서는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을 삼가고, 어리석은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있는 것을 삼갑니다.

3) 세존이시여, 세존을 인연으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께서는 부처님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갖추고, 가르침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갖추고, 참모임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갖추고, 거룩한 이들이 사랑하는 계행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갖추었습니다.

4) 세존이시여, 세존을 인연으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께서는 괴로움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괴로움의 발생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7. [세존]“아난다여, 그렇다. 아난다여, 그렇다.

1)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인연으로 부처님에게 귀의하였고 가르침에 귀의하였고 참모임에 귀의하였다면, 그 사람이 그 누군가에 대하여 인사하거나 일어서 맞이하거나 합장을 하거나 친절을 보이거나 의복, 음식, 깔개, 필수약품을 보시하여 그 은혜를 갚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나는 말한다.

 

2)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인연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을 삼가고, 어리석은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있는 것을 삼가했다면, 그 사람이 그 누군가에 대하여 인사하거나 일어서 맞이하거나 합장을 하거나 친절을 보이거나 의복, 음식, 깔개, 필수약품을 보시하여 그 은혜를 갚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나는 말한다.

 

3)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인연으로 부처님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갖추고, 가르침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갖추고, 참모임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갖추고, 거룩한 이들이 사랑하는 계행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갖추었다면, 그 사람이 그 누군가에 대하여 인사하거나 일어서 맞이하거나 합장을 하거나 친절을 보이거나 의복, 음식, 깔개, 필수약품을 보시하여 그 은혜를 갚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나는 말한다.

 

4)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인연으로 괴로움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괴로움의 발생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이 그 누군가에 대하여 인사하거나 일어서 맞이하거나 합장을 하거나 친절을 보이거나 의복, 음식, 깔개, 필수약품을 보시하여 그 은혜를 갚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나는 말한다.

 

8. 아난다여,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에는 열 네 가지가 있다.

1)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께 보시한다면, 이것이 첫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2)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두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3) 여래의 제자인 거룩한 님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세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4) 거룩한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님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네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5)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다섯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6)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님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여섯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7) 한 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일곱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8) 한 번 돌아오는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님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여덟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9) 흐름에 든 님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아홉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10) 흐름에 든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님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열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11)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난 밖의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열한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12) 도덕적인 일반 사람들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열두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13) 부도덕한 일반 사람들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열세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14) 축생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열네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9. 아난다여, 축생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백 배의 갚음이 기대된다.

부도덕한 일반 사람들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천 배의 갚음이 기대된다.

도덕적인 일반 사람들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십만 배의 갚음이 기대된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난 밖의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천억 배의 갚음이 기대된다.

흐름에 든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갚음이 기대된다.

하물며 흐름에 든 님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한번 돌아오는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님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님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거룩한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님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여래의 제자인 거룩한 님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10. 아난다여, 참모임에 대한 갚음의 보시에는 일곱 가지가 있다.

1)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수행승과 수행녀의 참모임에 보시한다. 이것이 첫 번째의 참모임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2) 여래가 최후의 열반에 든 이후에 수행승과 수행녀의 참모임에 보시한다. 이것이 두 번째의 참모임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3) 수행승의 참모임에 보시한다. 이것이 세 번째의 참모임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4) 수행녀의 참모임에 보시한다. 이것이 네 번째의 참모임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5)‘일정한 수행승들과 수행녀들을 나를 위해 지정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보시한다. 이것이 다섯 번째의 참모임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6)‘일정한 수행승들을 나를 위해 지정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보시한다. 이것이 여섯 번째의 참모임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7)‘일정한 수행녀들을 나를 위해 지정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보시한다. 이것이 일곱 번째의 참모임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11. 아난다여, 미래에 황색의 목을 하고1 비도덕적이고 악한 성품을 지닌 가문의 구성원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참모임을 위해 그 비도덕적인 사람들에게 보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모임에 주어진 보시는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리고 결코 개인에 대한 보시가 참모임에 대한 보시보다 더욱 커다란 과보를 낳지는 못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12. 아난다여, 보시의 청정에는 네 가지가 있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1) 보시하는 자가 청정하지만 보시받는 자는 청정하지 못한 보시가 있다.

2) 보시받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 못한 보시가 있다.

3) 보시하는 자도 청정하지 못하지만 보시받는 자도 청정하지 못한 보시가 있다.

4) 보시하는 자도 청정하지만 보시받는 자도 청정한 보시가 있다.

 

13. 아난다여,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받는 자는 청정하지 못한 보시란 어떠한 것인가? 보시하는 자는 도덕적이고 좋은 성품을 갖고 있으나 보시 받는 자는 비도덕적이고 나쁜 성품을 갖고 있다면,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 받는 자는 청정하지 못한 보시가 이루어진다.

 

14. 아난다여, 보시받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 못한 보시란 어떠한 것인가? 보시하는 자는 비도덕적이고 나쁜 성품을 갖고 있으나 보시 받는 자는 도덕적이고 좋은 성품을 갖고 있다면, 보시 받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 못한 보시가 이루어진다.

 

15. 아난다여, 보시하는 자도 청정하지 못하지만 보시받는 자도 청정하지 못한 보시란 어떠한 것인가? 보시하는 자도 비도덕적이고 나쁜 성품을 갖고 있고 보시 받는 자도 비도덕적이고 나쁜 성품을 갖고 있다면, 보시하는 자도 청정하지 못하지만 보시 받는 자도 청정하지 못한 보시가 이루어진다.

 

16. 아난다여, 보시하는 자도 청정하지만 보시받는 자도 청정한 보시란 어떠한 것인가? 보시하는 자도 도덕적이고 좋은 성품을 갖고 있고 보시 받는 자도 도덕적이고 좋은 성품을 갖고 있다면, 보시하는 자도 청정하지만 보시 받는 자도 청정한 보시가 이루어진다.”

 

17. 이처럼 세상에 존경받는 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바른 길로 잘 가신 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시고 스승으로서 또 다시 이와 같은 시를 읊으셨다.

 

“계행을 지키는 자가 계행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여법하게 얻어진 것을 흔쾌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보시하는 자의 덕행이 보시를 청정하게 만드네.

 

계행을 지키지 않는 자가 계행을 지키는 자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지 않고

여법하지 않게 얻어진 것을 불신의 마음으로 보시하면

보시받는 자의 덕행이 보시를 청정하게 만드네.

 

계행을 지키지 않는 자가 계행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지 않고

여법하지 않게 얻어진 것을 불신의 마음으로 보시하면

어느 쪽의 덕행도 보시를 청정하게 만들지 못하네.

 

계행을 지키는 자가 계행을 지키는 자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여법하게 얻어진 것을 흔쾌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그 보시는 굉장한 과보를 가져온다고 나는 말한다.

 

탐욕을 떠난 자가 탐욕을 떠난 자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여법하게 얻어진 것을 흔쾌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그 보시는 세간적 보시2 가운데 최상이라고 나는 말한다.”

 

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이 끝났다.

 

  1. 종성자(gotrabhuno)들은 단지 이름만이 수행자인 자들을 말한다. 그들은 목이나 팔에 노란 천 조각을 묶고 돌아다니면서 무역이나 농사에 종사하며 처자식을 먹여 살린다. [본문으로]
  2. 여기서 세간적 보시란 출세간적 보시가 따로 있다기보다는 보시자체가 세간적인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 마지막 구절은 한 거룩한 님(아라한)이 다른 거룩한 님에게 주는 보시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