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웨살리 재앙의 퇴치
깨달음을 이루신 후 4년, 부처님께서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머무실 때였다. 화려한 저택과 동산이 즐비한 도시 웨살리[Vesāli, ⓢ바이샬리Vaiśālī, 광엄성(廣嚴城)]에 재앙이 찾아들었다. 가뭄이 계속되더니 여름이 됐는데도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파종한 씨앗들은 싹도 틔워보지 못한 채 말랐고 나무도 열매를 맺지 못했다.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은 구걸할 기력조차 잃어버렸고, 역병까지 창궐해 썩어가는 시체들이 거리를 메웠다. 웨살리 사람들은 악취에 시달리며 갑자기 찾아든 병마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웨살리를 수호하던 신들이 떠나고 악귀가 도시를 점령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민심은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대중의 공의를 중시하던 릿차위족 사람들은 공회당에 모여 대대적인 회의를 열었다.
“기근과 질병으로 백성들이 죽어가고, 살아남은 이들마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많은 이들이 의견을 제시하였다. 바라문의 방식에 따라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공의는 지혜와 권능을 가진 성자를 초빙해 그분의 힘으로 재앙을 극복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그분의 힘으로 재앙을 극복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많은 이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대중들은 혜성처럼 나타난 마가다국의 젊은 성자에게 기대를 걸었다.
릿차위족 사람들은 젊은 시절 딱까실라에 유학한 국사의 아들 마할리를 대표로 선출하였다. 그리고 왕실의 바라문과 왕자들로 사절단을 구성해 마가다국으로 파견하였다. 마할리는 꼬살라국의 빠세나디왕은 물론 빔비사라와도 돈독한 교분이 있었다. 학덕이 우러나는 지혜로운 풍모를 가진 마할리는 선물을 준비하여 빔비사라왕을 찾아갔다.
“웨살리가 재난에 빠졌습니다. 위대한 성자의 감화가 아니면 이 재앙은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대왕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의 땅에 머무는 부처님을 웨살리로 보내주소서.”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이 자신의 나라를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더구나 정치적으로 적국이나 다름없던 웨살리의 재앙은 그에게 기회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격식을 갖추고 간청하는 오랜 친구의 얼굴을 마냥 외면할 수도 없었다.
“부처님은 저의 신하가 아닙니다. 웨살리로 가고, 가지 않고는 그분께서 직접 결정할 일입니다.”
자존심을 내세울 처지가 아니었다. 마할리는 탐탁지 않은 표정의 빔비사라왕에게 깊이 머리를 숙이고 죽림정사로 향했다.
“세존이시여, 성인께서는 중생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풍요롭던 웨살리가 지금은 기근과 역병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넘쳐나는 시체들을 치우지 못해 화려하고 향기롭던 거리에 악취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악귀가 점령한 웨살리를 구해주소서.”
잠시 침묵하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는 지금 빔비사라왕의 초대로 이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빔비사라왕께서 허락한다면 웨살리고 가겠습니다.”
빔비사라왕도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라자가하에서 강가에 이르는 닷새 동안의 여정을 빈틈없이 준비하고, 마가다국을 떠나는 부처님과 오백 명의 비구들을 강기슭까지 직접 전송하였다. 강 건너에서는 릿차위족 사람들이 마중하였다. 강을 건넌 부처님께서 왓지연맹의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 웨살리에 이르는 사흘 동안 빗줄기는 가늘어지지 않았고, 먼지가 날라던 왓지의 대지에 파란 싹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단 비에 기운을 차린 백성들은 거리에 쌓인 시체들을 치웠고, 숲의 나무들도 새순을 틔우고 성자를 맞이하였다. 웨살리의 성문에 도착하신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당신의 발우를 건네며 말씀하셨다.
“왕자들과 함께 깨끗한 물을 담아 거리마다 뿌리며 이렇게 말하라.”
이곳에 모인 모든 존재들 지상에 있건 공중에 있건
모든 존재들은 기뻐하소서. 마음을 가다듬고 제 말을 들으소서.
모든 존재들은 귀를 기울이소서. 밤낮으로 그대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인간의 자손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방일하지 말고 그들을 수호하소서.
이 세상과 내세의 그 어떤 재물이나 하늘나라 뛰어난 보배라 할지라도
우리들의 여래와 견줄만한 것은 없습니다 깨달으신 부처님이야말로 훌륭한 보배이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 모두 행복하소서
사꺄족 성자께서 삼매에 들어 성취한 지멸과 소멸과 불사(不死)와 승묘(勝妙)
이러한 열반과 견줄만한 것은 없습니다 거룩한 진실로 인해 모두 행복하소서.
확고한 마음으로 욕망을 없애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
그들은 희열을 얻고 적멸을 즐깁니다. 참다운 승가야말로 훌륭한 보배이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 모두 행복하소서
이렇게 칠일동안 계속하자 질병으로 죽는 사람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으며, 골목골목을 메웠던 악취와 질병의 기운이 씻은 듯 가셨다. 신통과 감화에 감복한 릿차위족 사람들은 세존과 비구들을 공회당에 모시고 공양을 올리며 극진히 대접하였다. 또한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웨살리 근교의 숲에 이층 강당 꾸따가라살라(Kūtāgārasālā)를 건립해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기증하였다. 웨살리는 니간타나따뿟따의 본향인 만큼 수많은 왕족과 백성들이 니간타 교도들이였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웨살리를 비롯한 왓지연맹의 땅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수많은 니간타 교도들이 개종하게 되었다. 그들 중 대표적인 사람이 웨살리의 총사령관 시하(Sīha)장군이다. 그는 무위법에 대해 부처님과 논의한 뒤 니간타와 웨살리 왕족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과감히 개종하였다. 죽는 날까지 우바새로 살도록 허락해달라고 간청하는 시하 장군에게 부처님은 조용히 만류하셨다.
“시하 장군이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처럼 명망 있는 사람은 신중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장군은 놀랐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깃발을 들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개종 사실을 선전했을 것이다. 이기심과 교만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시하 장군은 더욱 깊이 머리를 숙이며 맹세하였다.
“오늘부터 저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에게만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부처님은 그 다짐마저 만류하셨다.
“그 말씀을 거두십시오. 당신의 집은 오랫동안 니간타들의 우물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평등하게 공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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