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아! 그분 고따마 붓다/고따마 붓다의 생애

3. 빠세나디왕의 귀의

moksha 2017. 5. 30. 13:28

3. 빠세나디왕의 귀의

 

여러 무역로가 교차하는 사왓티(Sāvatthī)는 강력한 세력을 가진 부유한 도시였다. 남쪽 길은 꼬삼비와 쩨띠를 거쳐 아완띠와 앗사까로 연결되었고, 마투라를 거쳐 간다라와 깜보자로 이어지는 서북쪽 길로는 말 장수들과 함께 서역의 문물이 드나들었다. 또한 동쪽 길은 까삘라왓투ㆍ꾸시나라ㆍ빠와ㆍ웨살리를 거쳐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로 연결되었고, 남로와 동로 사이에는 아욧자(Ayojjhā)를 거쳐 와라나시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그 한 가운데 교단의 새로운 거점이 마련되자 부처님의 가르침은 길을 오가는 수많은 상인과 사신들에 의해 인도 전역으로 급속히 전파되었다.

꼬살국과 마가다국은 남북의 맹주였다. 영토를 확장해가던 꼬살라국의 국왕 마하꼬살라(Mahākosala)는 남쪽의 강력한 경쟁자인 마가다국의 군주 빔비사라왕에게 자신의 딸 웨데히(Vedehī)를 시집보냄으로서 정치적 동맹관계를 맺었다. 그는 딸의 지참금으로 최고급 비단 산지인 까시를 빔비사라왕에게 주었고, 빔비사라왕의 누이를 자신의 아들 빠세나디(Pasenadi)와 결혼시켰다. 빠세나디의 원래 이름은 아그니닷따(Agnidatta)이고 산스끄리뜨로 프라세나지뜨(Prasenajit)이며, 한역 경전에서는 파사익(波斯匿)ㆍ승광왕(勝光王)ㆍ승군왕(勝軍王)ㆍ월광왕(月光王)ㆍ화열왕(和悅王) 등으로 번역했다.

마하꼬살라의 뒤를 이른 빠세나디(Pasenadi)는 태자 시절 간다라의 딱까실라로 유학을 다녀온 명민한 왕이었다. 딱까실라는 인도ㆍ중앙아시아ㆍ서아시아를 잇는 상업과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북인도 최고의 학문 도시였다. 그곳에서 릿차위족의 왕자 마할리(Mahāli), 말라족의 왕자 반둘라(Bandhula)등과 돈독한 친분을 쌓고 전통 학문은 물론 요나(Yonā)라 불린 그리스의 문물까지 두루 섭렵하였다. 빠세나디는 국제적 감각을 지닌 실력자였다.

 

왕권을 잡은 빠세나디왕은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근절시키고 법질서를 바로 세우는 데 힘썼으며, 곳곳에 역참을 설치해 자신의 명령이 신속하게 전달되도록 체계를 세웠다. 군사와 행정을 정비하는 한편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에게 억만장자 멘다까(Meṇḍaka)의 아들 다난자야(Dhanañjaya)를 꼬살라국의 사께따(Sāketa)로 이주하도록 요청해 새로운 상업 도시를 건설하는 등 자국의 부국강병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또한 바라문 뽁카라사띠(Pokkharasāti)와 바라문 짱끼(Cakī)에게 봉토를 하사하는 등 기존 종교 지도자들과도 폭넓게 친분을 쌓았으며, 니간타와 아지위까(Ājīvika) 등 신흥종교에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빠세나디왕에게는 빔비사라왕의 누이 외에도 사왓티 명문가의 딸 웁비리(Ubbiri), 제따(Jeta)태자의 어머니 와르시까(Varsikā), 까삘라왓투에서 온 위두다바(Vidudabha)의 어머니인 와사바깟띠아(Vāsabhakhattiya), 사왓티 정원사의 딸 말리까(Malikā) 등 여러 명의 왕비가 있었다. 그중 빠세나디왕이 가장 사랑한 여인은 아름답고 총명한 말리까였다. 일찍이 부처님께 귀의한 말리까는 틈만 나면 빠세나디왕에게 권하였다.


“최고의 지혜를 성취하신 분, 삼마삼붓다를 뵐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대왕이여, 때를 놓치지 마소서.”


아내가 말하는 부처님은 이웃 사꺄(Sakyā)족 왕자 싯닷타(Siddhattha)였다. 자신의 보호 아래 있는 사꺄(Sakyā)족 왕자에게 직접 찾아간다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였다. 그러나 왕으로서 자신의 나라를 방문한 종교 지도자에게 예의를 갖추고 아량을 베푸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빠세나디왕은 하얀 코끼리에 황금으로 장식한 안장과 일산을 갖추고 왕의 위엄을 드날리며 기원정사로 향했다. 그러나 정작 소문이 무성하던 부처님을 만나자 예의를 갖추고 싶은 생각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아무리 존경받는 수행자고 하지만 꼬살라국의 대왕이 찾아 왔는데 일어나 맞이하지도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나이도 자기 또래밖에 되지 않았다.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도 아직은 젊은 사람이 완전한 지혜를 갖춘 부처님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빠세나디 왕 역시 머리를 숙이지 않고 육중한 몸을 땅에 던지듯 털퍼덕 앉으면서 한마디 던졌다.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성취한 분이라도 온 나라에 칭송이 자자하더군요. 고따마께서는 스스로 삼마삼붓다라고 인정하십니까?”


존경받는 수행자를 씨족의 이름으로 부르는 건 모욕이었다. 부처님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대왕이여, 나는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었다고 사실대로 말합니다.”


부처님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도 노여움도 없었다. 노련한 빠세나디왕은 웃음을 흘렸다.


“고따마여,뿌라나깟사빠ㆍ빠꾸다깟짜나ㆍ아지따께사깜빌라ㆍ막칼리고살라ㆍ산자야벨랏티붓따ㆍ니간타나따뿟따 이 여섯 분은 온 세상이 칭송하는 훌륭한 스승들이십니다. 제가 직접 그분들을 만나 지금처럼 물었을 때, 오랜 세월 수행한 그분들도 누구 하나 자신을 삼마삼붓다라고 말하진 않더군요. 고따마게서는 그들보다 나이도 젊고 수행자로 지낸 시간도 길지 않은데 어떻게 그리 자신합니까?”


부처님 역시 미소를 보이셨다.

“대왕이여, 이 세상에 아무리 작아도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 네 가지 있습니다.1 임금의 아들인 왕자ㆍ무서운 독사ㆍ불씨ㆍ비구(수행자) 이 네 가지는 아무리 작아도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됩니다.”

빠세나디왕은 뻗은 다리를 얼른 당겼다. 부처님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결코 가볍게 여기지 못할 당당함과 위엄이 서려 있었다. 빠세나디왕은 뻣뻣한 말투를 누그러트리며 자세를 낮추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왕이여, 임금의 아들은 아무리 어려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이가 어리고 권능을 온전히 갖추지 못했더라도 왕자를 예우하지 않고 핍박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가 왕이 되었을 때 크나큰 형벌로 보복할 것입니다.”

대왕이여, 독사는 아무리 작아도 주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맹독을 지닌 독사는 한 뼘 길이의 새끼도 거대한 코끼리를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그런 뱀을 가벼이 여겨 함부로 만진다면 그는 목숨을 보장하기 힘들 것입니다.

대왕이여, 불씨는 아무리 작아도 조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톱만한 불씨라도 바람이 도우면 산과 들을 모조리 태웁니다. 그런 불씨를 가벼이 여긴다면 그에게는 재앙과 커다란 손실이 기다릴 뿐입니다.

대왕이여, 수행자는 아무리 어려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청정한 계율을 갖추고 부지런히 지혜를 갈고 닦으면 그는 반드시 아라한이 됩니다. 번뇌의 뿌리를 모조리 뽑아버린 아라한은 공손한 예배를 받기에 충분합니다.”

 

왕위를 두고 백여 명의 이복형제들을 죽였고, 왕권의 강화를 위하여 백여명의 신하를 살해한 빠세나디였다. 수없이 살해의 위협을 겪어야만 했던 빠세나디였다. 왕권의 강화를 위해 아버지의 신하들을 죽이고, 반역의 기미가 보이면 자신을 옹립한 권신들까지 용서하지 않던 빠세나디였다. 그는 세상의 위험과 두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앞뒤 말에서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부처님에게 빠세나디왕은 간단히 예의를 갖추고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사왓티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사문 고따마를 믿지 말라. 그는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궤변만 늘어놓는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한 바라문이 늘그막에 아들을 하나 얻었다. 그 어린 아기가 그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내로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귀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이 일곱 살에 갑자기 병이 들었다. 온 재산을 바쳐 살려보려고 했지만 아이는 허망하게 죽고 말았다. 늙은 아버지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비탄과 눈물로 잠을 이루지 못하며 나날을 술로 보내던 그는 '모든 고뇌를 해결해주는 분이 기원정사에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부처님을 찾아갔다. 바라문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가슴이 찢어지는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사랑스럽고 은혜로운 일이 있으면 따라서 근심하고 슬퍼할 일이 생깁니다.”


바라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일이 있으면 행복이 찾아와야 마땅했다. 세 번을 되물었지만 부처님은 '사랑과 은혜가 비탄과 눈물의 씨앗이다'는 말씀만 되풀이 하셨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오던 바라문이 길가에서 도박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머리가 좋기로 도박꾼들만 한 이들도 없다고 생각한 바라문이 물었다.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랑과 은혜가 행복의 씨앗입니까, 근심과 슬픔의 씨앗입니까?”


도박꾼들이 손뼉을 치며 큰 소리고 웃었다.

“그런 바보 같은 말이 어디 있습니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풀고 누군가의 은혜를 받는 일보다 더한 행복이 이 세상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사문 고따마는 사랑과 은혜가 곧 근심과 슬픔의 씨앗이 된다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을 뒤집어 말하는군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 그런 말은 믿지 마십시오.”


소문은 궁전까지 퍼졌다. 이를 두고 빠세나디왕이 말리까를 조롱하였다.

“당신이 존경하는 고따마는 엉뚱한 말로 사람을 헷갈리게 하더군요.” 말리까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대왕이시여, 이 꼬살라국을 다른 나라 왕이 침범해 빼앗는다면 대왕께선 어떻겠습니까?” “나의 부와 행복은 모두 이 나라가 있기 때문이지 않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무척 괴롭겠지요.”


“대왕이여, 대왕께서 사랑하시는 왕자와 공주가 병들어 죽는다면 대왕께선 어떻겠습니까?” 빠세나디왕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런 일은 상상하기도 싫소.”

“대왕께서 못난 저를 아끼고 사랑하며 지금껏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제가 만일 갑자기 병들어 죽게 된다면 대왕께선 어떻습니까?”“당신을 갑자기 잃는다면 슬픔을 가누지 못해 미쳐버리고 말 것이오.”

말리까가 왕에게 합장하고 말하였다.


“대왕이여, 이것이 사랑과 은혜가 근심과 슬픔의 씨앗이 된다고 말씀하신 부처님 뜻입니다.”

깜짝 놀란 빠세나디왕은 평상에서 일어나 계단 아래로 내려섰다. 빠세나디왕은 멀리 기원정사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사꺄(Sakyā)족 왕자 싯닷타(Siddhattha)가 아닌 진리의 구현자 부처님에게 예배하였다. 

 

“꼬살라국의 왕 빠세나디가 세존께 귀의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의 발아래 예배합니다.”

 

부처님이 사왓티에 계실 때면 빠세나디왕은 늘 찾아뵙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제자의 예를 다하였다. 좋은 벗이자 스승으로 섬기며 남들에게 얘기치 못할 속사정과 아픔을 털어놓고, 국가의 중대사를 의논하며, 국왕의 도리를 묻기도 하였다. 그런 빠세나디왕에게 부처님은 항상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자비로운 마음으로 백성들을 외아들처럼 보살펴야 합니다. 그들을 핍박하거나 해쳐서는 안 됩니다. 그릇된 견해를 멀리하고 올바른 길을 걸으십시오. 교만하지 말고 남을 얕보지 마십시오. 간신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며, 왕이라 해도 법을 어기지 마십시오.

대왕이여, 법답지 못한 것은 항복 받으십시오. 단 열매를 따려면 반드시 좋은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심지 않으면 열매를 딸 수 없습니다. 선행을 닦지 않으면 훗날 즐거움을 기대할 수 없으니 스스로 반성하고 악행을 삼가십시오. 자기가 지은 것은 반드시 자기가 거두어야합니다. 과보는 세상 어딜 가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대왕이여, 권력만 믿고 세월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목숨이 있는 한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항상 바른 법을 닦아야 죽음이 다가왔을 때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변합니다. 더없이 나를 행복하게 하던 부귀와 권력도 돌아보면 그땐 아침 이슬과 같을 것입니다.”

꼬살라국의 빠세나디왕은 살라나무숲에 작은 정사를 지어 부처님께 바치고, 왕비 말리까와 함께 교단의 후원자가 되었다.

또한 빠세나디왕의 대신 이시닷따(Isidatta)와 뿌라나(Purāṇa) 형제도 부처님께 귀의해 삼보를 후원하고 불법을 홍포하는데 혼신의 힘을 바쳤다.


  1. 젊은이의 경(Daharasutta, 상윳따니까야 S3:1)의 내용과 일치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