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교단의 성장
1. 사왓티의 상인 수닷따
부처님께서 고향 방문을 마치고 라자가하로 돌아와 시따와나1(Sītavana, 한림寒林)에 머무실 때였다. 샛별이 반짝이는 초저녁에 라자가하 거리로 들어선 사왓티2(Sāvatthī)의 한 상인이 라자가하 부잣집의 문을 두드렸다.
그 집은 그 상인의 아내 뿐날락카나(Puññalakkhaṇā)의 오라버니 집이었다. 여러 차례 문을 두드렸지만 한참이나 지나서 문이 열렸다. 이상했다. 방문할 때마다 즉시 두 팔을 벌리며 달려 나오던 처남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여느 때처럼 마중 나오지도 않고, 무슨 일이 바쁜지 찾아온 누이의 남편에게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전에 없던 처남의 태도에 상인은 놀랍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였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온 집안사람이 눈길도 주지 않았다. 부엌에서는 음식 준비로 분주하고, 하인들은 구석구석 청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던 그는 사람들 틈에 끼인 처남을 발견하였다. 그는 손수 전단나무로 짠 평상을 펴고 색동방석을 깔고 있었다.
“얼마나 거창한 잔치가 있기에 이리 법석을 떠십니까?”
“오, 자네 왔는가?”
말로만 반기고 있었다. 얼굴은 먼 길을 온 손님은 뒷전이었다. 손에든 방석만 들었다 놓았다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남은 한참 만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손을 털며 돌아섰다.
“누구, 결혼식입니까, 아니면 마가다국의 왕이라도 초대하신 겁니까?”
“결혼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임금님을 초대한 것도 아닐세.”
“그럼 이렇게 큰 잔치는 도대체 뭡니까?”
“내일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을 공양에 초대했거든.”
“부처님이라고요?”
“그래. 부처님.”
“정말 부처님이시라고요?”
“허허, 이사람. 부처님이시라니까.”
완전한 지혜를 깨달으신 분, 번뇌에 물들지 않고 온갖 고뇌를 해결해주시는 성자가 세상에 출현하셨다니,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이 지금 어디계십니까?”“부처님은 성밖 시따와나에 머물고 계신다네.”
“지금 찾아뵐 수 있습니까?”
“이 사람 참 성미하고는. 날이 저물어 오늘은 늦었네. 내일 공양에 오시면 뵙든지 정 기다리기 힘들면 날이 밝거든 찾아뵙게.”
달그락 거리는 그릇 소리와 분주한 발걸음도 잦아들고 마당에 별빛이 내려앉았다. 눈을 감고 누웠지만 사왓티 상인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 내가 부처님을 뵙게 되다니.......’
그는 선잠에서 깨어 세 차례나 방문을 열어보았다. 멀리 동쪽 하늘 끝으로 희끗한 기운이 감도는 듯도 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그는 처남 집을 나와 시따와나로 향했다. 성문 밖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간간이 새어나오던 인가의 불빛마저 끊기자 길은 고사하고 코앞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숲에 들어서자 등골이 오싹해지고 두려움이 엄습했다. 발밑에서 마른 뼈다귀가 나뒹굴고 사방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시따와나숲은 야차들이 출몰하는 곳이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옮기지 못하고 있을 때 머리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렷다.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은 온갖 보배보다 귀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물러나지 마십시오.”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런 분을 직접 뵌다는 건 좀처럼 오기 힘든 기회야.’
용기를 내어 한걸음 더 내딛자 누가 횃불이아도 비춘 듯 길이 환히 보였다. 몇 번이나 머뭇거리던 스스로를 다그치는 사이 어느새 여명이 밝아오고 맑은 새소리가 숲을 깨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새벽이슬을 밟으며 누군가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왓티 상인은 움직일 수 없었다. 넋 놓고 바라볼 뿐 한마디 인사말도 건넬 수 없었다. 합장조차 할 수 없었다. 부처님이 아침 햇살처럼 눈부신 모습으로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수닷따.”
처음 보는 이의 이름을 어떻게 아셨을까? 밝게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성자의 모습에 상인은 깜짝 놀랐다. 정신을 차린 상인은 무릎을 꿇고 합장하였다.
“저는 사왓티의 상인 수닷따(Sudatta, 수달다須達多)입니다.”
“수닷따.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험난한 국경을 넘나들며 수많은 이들과 교분을 쌓아온 수닷따였다. 생사를 함께하며 맺은 교분 덕에 어디를 가건 친형제나 다름없이 맞이하는 벗을 둔 그였다. 그러나 오늘처럼 따스하고 편안한 환대는 처음이었다. 부처님은 마음의 문을 열고 부드러운 손길로 당신의 자리에 초대해주셨다. 깨끗하고 향기로운 그 자리는 숲 속 오솔길 나무 아래였다.
숲의 주인은 찾아온 나그네를 위로하고, 먼 길을 마다 않은 그의 정성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두려움을 떨친 노고에 보답하듯 진리의 보물을 한 아름 안겨주셨다. 위험과 재난이 도사린 세상에서 어느 길이 행복으로 가는 길인지 일러주고, 그 길 끝에 기다리고 있는 좋은 결과들에 대해 알려주셨다. 수많은 장삿길에서 이보다 큰 이익을 얻은 적은 없었다. 마음 가득 기쁨이 차올랐다. 수닷따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혜가 부유한 주인에게 예배하였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법의 귀의합니다. 거룩한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당신의 제자가 되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받들고 모실 수 있도록 허락해주소서.”
부드러운 미소로 허락하시는 부처님께 수닷따는 청하였다.
“넘치도록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할 기회를 주소서. 세존이시여, 당신을 위해 정사를 짓겠습니다. 제자가 살고 있는 사와티를 방문해주소서.”
부처님은 세 번이나 간절히 청하는 수닷따에게 눈을 감은 채 허락의 표정을 보이지 않으셨다. 중요한 거래에서 포기해본 일이 없는 수닷따였다. 그는 예의에 벗어난 일이란 것을 알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수닷따는 네 번째로 간청하였다.
“세존이시여, 당신을 위해 정사를 짓겠습니다. 사왓티로 오셔서 안거를 보내십시오.”
감았던 눈을 뜨고 부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나는 시끄럽지 않고 조용한 곳을 좋아합니다.”
수닷따는 기뻐하며 처남의 집으로 돌아갔다.
해가 높이 뜨고 조용하고 온화한 수행자들이 줄을 지어 찾아오셨다. 온 집안사람들은 예의를 다해 성스러운 이들을 맞이하고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을 공손히 올렸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두 손으로 발우를 들어 음식을 받고 말없이 앉아 음식을 잡수셨다. 공양이 끝나고, 부처님은 집안사람들에게 법문을 설하셨다. 법문 끝 무렵에 수닷따가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 예배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다시 사왓티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존께서 머무시기 알맞은 장소를 물색할 비구를 저와 동행하게 해 주십시오.”
좌중을 둘러보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붓따. 이 일을 그대가 맡아주겠는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 시따와나(Sītavana) : 한림(寒林)또는 시타림(尸陀林)이라 번역되는 공동묘지로서 영취산 아래에 있었다. 이곳을 산쓰끄리뜨로 슈마사나(śmaśāna)라고도 하는데, 이는 ‘시체를 버리는 장소’라는 뜻이다. 근처에는 지와까(Jīvaka)가 소유했던 망고나무 밭과 빔비사라(Bimbisāra)왕이 아들 아자따삿뚜(Ajātasattu)에 의해 유폐되었던 감옥터 손반다르 동굴(Sonbhandar Caves)이 있었다. [본문으로]
- 사왓티(사왓띠 Sāvatthī) : 꼬살라(Kosalā)국의 수도이다. ⓢ스라와스티(슈라와스띠śrāvastī), 사위성(舍衛城) 혹은 실라벌성(室羅伐城)으로 한역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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