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히빳시까(Ehipassika)
고따마 붓다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경험에 의해 확보되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의 힘을 믿고 그 힘을 숭배하거나 복종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불교(佛敎)는 맹목적으로 믿고 매달리는 신앙(信仰)의 종교가 아니라 납득되었기 때문에, 믿는 신해(信解)의 종교이며, 확신하기 때문에 행동에 옮기는 신행(信行)의 종교이다.
고따마 붓다는‘와서 믿으라’고 말하지 않고 ‘와서 보라(ehipassika)’거나 누구라도
‘와서 이 법을 보라(ehi passa imam dhammam)’고 말했다.
아래의 구절은 다른 어떠한 철학이나 종교와 구별되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특징을 대변하는 유명한 구절이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가르친 연기의 특성을 설명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세존께서 잘 설하신 이 가르침은
스왁카또 바가와따 담모
sandiṭṭhiko, 현세의 삶에 유익한 것이고
싼딧티꼬
akāliko,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며
아깔리꼬
ehipassiko, 와서 보라고 할 만한 것이고
에히빳시꼬
opanayiko, 최상의 목표로 이끄는 것이며
오빠나이꼬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ī'ti. 슬기로운 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빳짯땅 웨디땁뽀 윈뉴히'띠
‘현세의 삶에 유익한 (sandiṭṭhika)’가르침이란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은 현실적인 가르침이다. 지나 간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에 '...이 될 것이다.'라는 허황된 것이 아니다.
‘시간을 초월한 것(akālika)’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인 성스런 삶의 길을 실천하는 결과가 즉시에 나타남을 말한다. 시간을 요하지 않기 때문에 즉시 효과가 있고 또 시간을 초월한 것이다.
‘와서 보라(ehipassika)’라는 말은 진리에 대한 자신감이며 객관적이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보편적인 것으로서 명백하여 눈 있는 자는 누구나 볼 수 있어 숨길것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숨길 것이나 비밀스런것은 없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서 결코 주먹을 펴지 않는 스승의 주먹[사권(師拳)]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상의 목표로 이끄는 것(opanayika)’이란 부처님 가르침의 지향점을 말하는 것으로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궁극적인 행복인 열반으로 인도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혜로운 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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