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진리의 바다/와서 보라!(ehipassika!)

불의 비유와 밧차곳따의 경 (3) : 여래는 해탈하여, 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바닥을 알 수 없어 마치 커다란 바다와 같다.

moksha 2016. 9. 9. 12:00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3번)

               나모     땃싸      바가와또    아라하또         쌈마쌈붓닷싸 (3번)

그 분, 세상의 존귀한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께 예경하나이다.


불의 비유와 밧차곳따의 경(Aggivacchagottasutta, M72) (3)


24. [세존] “밧차여,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물질로써 여래를 묘사하려고 하지만 여래에게 그 물질은 끊어졌습니다. 여래는 물질의 뿌리를 끊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만들고, 존재하지 않게 하여,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게 합니다. 밧차여, 참으로 여래는 물질이라고 여겨지는 것에서 해탈하여, 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바닥을 알 수 없어 마치 커다란 바다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게는 사후에 다시 태어난다는 말도 타당하지 않으며, 사후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말도 타당하지 않으며, 사후에 다시 태어나기도 하고 다시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는 말도 타당하지 않으며, 사후에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란 말도 타당하지 않습니다.

 

25. 밧차여,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느낌으로 여래를 묘사하려고 하지만, 여래에게 그 느낌은 끊어졌습니다. 여래는 느낌의 뿌리를 끊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만들고, 존재하지 않게 하여,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게 합니다. 밧차여, 참으로 여래는 느낌이라고 여겨지는 것에서 해탈하여, 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바닥을 알 수 없어 마치 커다란 바다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게는 사후에 다시 태어난다는 말도 타당하지 않으며, 사후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말도 타당하지 않으며, 사후에 다시 태어나기도 하고 다시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는 말도 타당하지 않으며, 사후에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란 말도 타당하지 않습니다.

 

26. 밧차여,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지각으로 여래를 묘사하려고 하지만, 여래에게 그 지각은 끊어졌습니다. 여래는 지각의 뿌리를 끊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만들고, 존재하지 않게 하여,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게 합니다. 밧차여, 참으로 여래는 지각이라고 여겨지는 것에서 해탈하여, 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바닥을 알 수 없어 마치 커다란 바다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게는 사후에 다시 태어난다는 말도 타당하지 않으며, 사후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말도 타당하지 않으며, 사후에 다시 태어나기도 하고 다시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는 말도 타당하지 않으며, 사후에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란 말도 타당하지 않습니다.

 

27. 밧차여,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형성으로 여래를 묘사하려고 하지만, 여래에게 그 형성은 끊어졌습니다. 여래는 형성의 뿌리를 끊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만들고, 존재하지 않게 하여,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게 합니다. 밧차여, 참으로 여래는 형성이라고 여겨지는 것에서 해탈하여, 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바닥을 알 수 없어 마치 커다란 바다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게는 사후에 다시 태어난다는 말도 타당하지 않으며, 사후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말도 타당하지 않으며, 사후에 다시 태어나기도 하고 다시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는 말도 타당하지 않으며, 사후에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란 말도 타당하지 않습니다.

 

28. 밧차여,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의식으로 여래를 묘사하지만, 여래에게 그 의식은 끊어졌습니다. 여래는 의식의 뿌리를 끊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만들고, 존재하지 않게 하여,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게 합니다. 밧차여, 참으로 여래는 의식이라고 여겨지는 것에서 해탈하여, 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바닥을 알 수 없어 마치 커다란 바다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게는 사후에 다시 태어난다는 말도 타당하지 않으며, 사후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말도 타당하지 않으며, 사후에 다시 태어나기도 하고 다시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는 말도 타당하지 않으며, 사후에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란 말도 타당하지 않습니다.”

 

29. 이처럼 말씀하시자 유행자 밧차곳따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밧차곳따] “세존이신 고따마여, 예를 들어 마을이나 부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쌀라나무가 있는데, 끊임없이 그 가지와 잎들이 떨어지고, 그 겉껍질과 속껍질도 떨어지고, 그 백목질도 떨어졌다고 합시다. 그 쌀라나무가 가지와 잎들이 떨어지고, 겉껍질과 속껍질도 다 떨어지고, 백목질도 다 떨어져서, 나무심으로만 순수하게 이루어진 것과 같이, 존자 고따마의 이러한 말씀도 가지와 잎들이 다 떨어지고, 겉껍질과 속껍질도 다 떨어지고, 백목질도 다 떨어져서, 나무심으로만 순수하게 이루어졌습니다.

 

30. 세존이신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올리듯,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재가신자로서 저를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 바쳐 귀의하겠습니다.

 

불의 비유와 밧차곳따의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