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의 경(Adhipateyyasutta, A3:40)
[부처님 가르침의 경구의 위대성]
1.[세존]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세 가지 동기가 있다. 세 가지란 무엇인가? 개인의 동기, 세상의 동기, 가르침의 동기이다.
2. 수행승들이여, 개인의 동기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수행승이 숲 속으로 가고 나무 밑으로 가고 빈 집으로 가서 이와 같이 성찰한다. ‘나는 옷 때문에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지 않았다. 더구나 나는 음식 때문이나 와좌구 때문이나 이러저러한 것 때문에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의해서 괴로움에 빠져있고 괴로움에 정복당했다.
나는 일체의 괴로움의 다발의 종식을 실현해야겠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끊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나와 같은 자가 실로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최악의 일이다. 나에게 그것은 옳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이와 같이 ‘나는 물러나지 않고 사띠를 확립하고 혼미하지 않고 몸을 평안히 하고 격정이 없고 마음을 집중하고 통일하겠다.’라고 성찰한다.
그는 자신을 동기로 삼아 악하고 불건전한 것을 버리고, 착하고 건전한 것을 계발하고, 허물이 있는 것을 버리고, 허물없는 것을 계발하고, 자신의 청정을 보살핀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개인의 동기이다.
3. 수행승들이여, 세상의 동기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수행승이 숲 속으로 가고 나무 밑으로 가고 빈 집으로 가서 이와 같이 성찰한다.‘나는 옷 때문에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지 않았다. 더구나 나는 음식 때문이나 와좌구 때문이나 이러저러한 것 때문에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의해서 괴로움에 빠져있고 괴로움에 정복당했다.
나는 일체의 괴로움의 다발의 종식을 실현해야겠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이 출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대한 사유를 일으키고, 분노에 대한 사유를 일으키고, 폭력에 대한 사유를 일으켰다.
그런데 이 인간 세상은 드넓다. 이 드넓은 인간 세상에는 신비한 능력과 하늘눈과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지닌 수행자들과 성직자들이 있다.
그들은 가까이 나타나지 않고 멀리서만 보아도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타자의 마음을 안다.
그들은 나에 관해서 이와 같이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양가의 아들에게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 가득 찬 것을 보아라.’라고 알 것이다.
또한 신비한 능력과 하늘눈과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지닌 신들이 있다.
그들도 가까이 나타나지 않고 멀리서만 보아도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타자의 마음을 안다.
그들도 나에 관해서 이와 같이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양가의 아들에게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 가득 찬 것을 보아라.’라고 알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이와 같이 ‘나는 물러나지 않고 사띠를 확립하고 혼미하지 않고 몸을 평안히 하고 격정이 없고 마음을 집중하고 통일하겠다.’라고 성찰한다.
그는 세상을 동기로 삼아 악하고 불건전한 것을 버리고, 착하고 건전한 것을 계발하고, 허물이 있는 것을 버리고, 허물없는 것을 계발하고, 자신의 청정을 보살핀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세상의 동기이다.
4. 수행승들이여, 가르침의 동기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수행승이 숲 속으로 가고 나무 밑으로 가고 빈 집으로 가서 이와 같이 성찰한다.‘나는 옷 때문에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지 않았다. 더구나 나는 음식 때문이나 와좌구 때문이나 이러저러한 것 때문에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의해서 괴로움에 빠져있고 괴로움에 정복당했다. 나는 일체의 괴로움의 다발의 종식을 실현해야겠다.
세존께서 설하신 이 성스러운 가르침은 현세의 삶에서 유익한 것이고,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한 것이고, 최상의 목표로 이끄는 것이며, 슬기로운 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동료 가운데는 앎과 봄을 지닌 자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잘 설해진 가르침과 계율에 출가한 내가 게으르고 방일하다면 나에게 옳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이와 같이‘나는 몰러나지 않고 사띠를 확립하고 혼미하지 않고 몸을 평안히 하고 격정이 없고 마음을 집중하고 통일하겠다.’라고 성찰한다.
그는 가르침을 동기로 삼아 악하고 불건전한 것을 버리고, 착하고, 건전한 것을 계발하고, 허물이 있는 것을 버리고, 허물없는 것을 계발하고, 자신의 청정을 보살핀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가르침의 동기이다.”
5. [세존]
“악한 행위를 한 사람에게 세상에 비밀은 없다.
사람이여, 진실인지 거짓인지 그대 자신이 안다네.
그것이 훌륭한 증인이니
이것을 간과하고 마음에 악을 숨기네.
어리석은 자가 행하는 악은
신들이 알고 여래가 안다네.
그래서 자신을 동기로 하는 님은
사띠(새김)를 행하고
세상을 동기로 하는 님은
슬기롭게 선정에 들고
가르침을 동기로 하는 님은
여법하게 실천하네.
진리에 의지하여 노력하는 성자는
퇴락하지 않네.
악마를 진압하는 님, 죽음을 정복한 님,
태어남을 부순 님, 정근을 갖춘 님,
세상을 아는 님, 현명한 님은
모든 현상에 매이지 않는다네.”
동기의 경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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