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셨으니 행복하여라! sukho Buddhānaṃ uppādo!

▣ 열반은 궁극의 행복이다.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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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본래불(本來佛)사상과 무아(無我)의 가르침은 다르다

moksha 2018. 4. 6. 14:47


본래불(本來佛)사상과 무아(無我)의 가르침은 다르다

 





 

인터넷과 정보통신시대입니다.

페이스북에서도 스님들을 많이 만납니다.

현실에서는 스님들 보기 어렵고 절 보기도 힘듭니다.

페이스북에서는 스님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에도 스타스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체험을 바탕으로 글을 잘 쓰는 스님입니다.

매일 쓰는 것도 아니고 드문드문 올림에도

불자들은 변함없는 지지를 하는 것 같습니다.

 

 

깔라마들이여, 소문이나 전승이나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성전의 권위나

논리나 추론에도 끄달리지 말고,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

그럴듯한 개인적인 인상이나

이 수행자가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 끄달리지 마십시오.”(A3.65)

 

 

성전의 권위에 끄달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회의론자들은 부처님 말씀에도

끄달리지 말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 것이라면 삼귀의에서

법귀의가 성립되지 않아 가르침은 부정됩니다.

 

스승이 말했다고 하여 끄달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여로모로 타당한 말입니다.

스승이 말한 것이라 하여 부처님 말씀처럼

믿고 따르기 보다는 가르침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뭐꼬라는 화두는

붓다의 말씀에 정확히 부합됩니다.”

 

 

이 말은 페이스북에서 어느 스님이 말했습니다.

간화선의 이뭐꼬화두가 초기경전에서

말하는 유신견타파 정형구와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M22)

 

 

이것이 유신견타파 정형구입니다.

이것에 오온을 대입하면

20가지 유신견타파 정형구가 됩니다.

물질을 대입하면 물질은 나의 것이고,

물질은 나이고, 물질은 나의 자아다.”가 됩니다.

 

이뭐꼬 화두 드는 것이 부처님 무아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놀라운 말입니다.

더구나 유신견 정형구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이에 어느 교수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고요와 평온만이 존재할 때가 오는데,

그 너머로 이끌고 가는 지혜라는 놈은 또 무엇입니까.

아뜨만이나 참나가 가지고

노는 놈의 이름이 지혜입니까.”라고.

 

 

이런 문제제기는 어느 정도 타당합니다.

먼저 간화선이 무엇인지 알아야합니다.

그것은 삼요체로 설명됩니다.

대신심과 대의심과 대분심을 말합니다.

 

대신심은 본래 우리가 부처임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간화선에서 깨달음을 얻으려면

자신이 본래 부처였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大信心)

 

다음 단계는 내가 본래 부처(本來佛)’임을

증명해 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오직 모를 뿐!”이라며

의정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大疑心)

 

그럼에도 아직까지 부처가

되지 못함을 분하게 생각합니다.

이럴 때 오직 할 뿐!”라며

불굴의 신념으로 용맹정진하는 것입니다.(大憤心)

 

간화선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마치 유일신교에서 창조주를 믿는 것처럼,

자신이 본래 부처였음을 믿어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본래불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깨달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간화선 이뭐꼬는 본래불을 찾기 위한 화두입니다.

부처님이 말씀 하신 무아(無我)의 가르침과 다른 것입니다.

간화선에서 본래불을 찾는 것은

부처님의 궁극적 가르침인 열반과도 다른 것입니다.

 

이런 의문이 들어갑니다.

이뭐꼬 화두 드는 것이 부처님 말씀과

일치하는 것이라면 간화선을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부처님이 설한 오온, 십이처, 십팔계 등

잘 전승된 분석적 가르침을 따르면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대승불교와

초기불교가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초기불교를 더 발전시킨 것이 대승이라 합니다.

또 이런 의문이 들어갑니다.

초기와 대승이 다르지 않다면

굳이 대승불교를 믿어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간화선과 부처님 가르침은 다른 것입니다.

간화선에서 정견은 본래불을 아는 것이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정견은 사성제를 아는 것입니다.

서로 길도 다르고 방향도 다릅니다.

 

길도 다르고 방향도 다르면

목적지도 다를 것입니다.

간화선의 종착지는 자신이 본래불임을 아는 것입니다.

선사들은 본래불에 대하여 참나(眞我)라 합니다.

 

어느 교수가 스님의 글에 반론했습니다.

지혜로 이끌어 간다라는 말에 마음의

조작이나 속임수가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참나를 염두에 둔 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스님에 따르면, 수행을 하다 보면

모든 것이 다 떨어져 나가고

고요와 평온이 올 때 지혜가 이끌어간다고 합니다.

과연 이 지혜는 무엇을 말할까요?

 

체험한 자 만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끌어 간다고 했는데

또 다른 자아나 초자아, 참나가

이끌어 간다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교수의 반론에 스님은 관념놀이 한다고 말했습니다.

더구나 중도론자들은 어떤 견해도 부정한다.’라며

반론을 제기하는 것에 대하여

끝없는 관념놀이의 탑을 쌓는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간화선의 이뭐꼬 화두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합되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궁극적 가르침인 열반과 같지도 않습니다.

열반은 지각과 느낌이 소멸하여 알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선불교는 부처님 근본가르침과

너무나 멀리 나가 동떨어진 것이 되었습니다.

정견도 다르고 목적지도 다릅니다.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습니다.

러시아 불교학자 체르바츠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하야나 (大乘) 주의자들은 완전히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다.”라고

 

 

오늘날 선불교는 대승불교와도 다르고

초기불교와는 더더욱 다른 것입니다.

조사(祖師)스님들은 부처님 가르침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종교를 만든 것 같습니다.

 

 

2018-04-04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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