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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생각한다/한국불교를 생각하다

[스크랩] 종교인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분노,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 시즌2

moksha 2017. 12. 13. 23:15


종교인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분노,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 시즌2

 

 

조계종 구승(求僧)광고

 

조계종 출가자 수가 급감했습니다. 최근 중앙 일간지에 따르면 작년 조계종 출가자수는 150명으로 까지 줄었습니다. 대체로 연간 500명 가량 유지했던 출가자가 2000년 대 초반까지만 해도 300명 대, 2010년대 들어 200명 대로 떨어지더니 마지노선으로 생각했던 150명까지 이른 것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 조계종 출가자는 120명대가 될 것이라 합니다. 앞으로 이삼년 후에는 아마 100명 이하로 떨어질 것입니다.

 

출가자가 100명 이하로 떨어진다면 조계종은 붕괴의 단계로 접어 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니 한국불교가 해체 되는 단계에 들어 설지 모릅니다. 출가자수는 갈수록 줄어 두 자리 숫자를 유지하고 기존출가자는 고령화가 진행 되고 있는 현실에서 앞으로 10, 20, 30년 후의 한국불교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래서일까 조계종에서는 인터넷에 출가자 광고를 냈습니다.

 




조계종에서 최초로 출가자 광고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충격 받았습니다. 마치 구인광고 하듯이 출가권유를 권유하는 구승(求僧)’ 광고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잘 생긴 비구스님과 비구니스님을 모델로 사용했습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회사구인 광고하듯이 성직자, 아니 수행자를 구인하는 광고를 냈는지 짐작케 합니다.

 

출가는 자신의 선택

 

출가는 자신의 선택입니다. 누가 강요해서 출가하는 것도 아니고 생계 때문에 출가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 당시 걸식에 의존하여 살아 가는 수행승들에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이 탁발이라는 것은 삶의 끝이다. 세상에는 손에 바루를 들고 돌아다녀라!’라고 하는 저주가 있다. 그러나 수행승들이여, 훌륭한 아들들은 타당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 그러한 삶을 선택한 것이다. 결코 왕이 강요한다고 그런 것이 아니고 강도가 강요한다고 그런 것이 아니고, 빚을 졌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두려움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떨어졌다. 괴로움에 떨어져 괴로움에 둘러싸여 있다. 적어도 괴로움의 다발들이 종식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S22.80)

 

 

부처님은 탁발이라는 것이 삶의 끝이라 했습니다. 바루를 들고 음식을 빌어 먹는 것에 대하여 저주받는 것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고대인도에서는 음식을 빌어 먹는 자들에 대하여 하찮은 자들, 형편 없는 자들, 나쁜 자들이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분노하면 중옷이나 입고 그릇을 들고 밥이나 빌러 다녀라.”(Srp.II.301)라는 저주가 있었다고 합니다. 적을 공격할 때 주로 쓰는 말이라 합니다.

 

부처님은 출가에 대하여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생계 때문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청정한 삶으로 번뇌를 종식하여 다시는 태어나고 죽는 일이 없는 완전한 열반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라 했습니다. 출가목적이 분명한 것입니다.

 

맛지마니까야 랏타빨라의 경(M82)’에서는 네 가지 출가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세상은 불안정하여 사라진다”라 하여 늙고 노쇠하고 고령이 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이 세상은 피난처가 없고 보호자가 없다”라 하여 고통을 나누어 가질 수 없기 때문이고, 세 번째는 “이 세상은 나의 것이 없고 모든 것은 버려져야 한다”라 하여 저 세상으로 갈 때 지은 행위대로 가기 때문이고, 네 번째는 “이 세상은 불완전하며 불만족스럽고 갈애의 노예상태이다”라 하여 이익과 욕망을 찾아 이것 저것을 탐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이렇게 출가이유가 분명했을 때 기꺼이 탁발에 의존하는 등 청정한 삶을 살았습니다.

 

암묵의 범계승카르텔

 

출가자가 급감한 것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출산율저하에 따른 인구절벽도 큰 이유일 것입니다. 그것 못지 않게 종단이 청정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앙일간지에서는 종교에 대한 불신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내부적인 병폐와 모순이 외부로 불거지고 터져나오면서 정신적 귀감이 되어야 할 종교가 시대에 발맞추기는커녕 오히려 퇴행하며 적폐의 온상으로까지 여겨지고 있는 상황이다.”(경향신문, 2017-12-11)라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종교집단은 가장 청정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 보면 거짓과 위선과 모순으로 가득합니다. 불교종단 역시 이에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익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하는 반승반속(半僧半俗)의 무리들이 종단권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청정하고 허물없는 스님들은 대부분 주변부로 밀려났습니다. 한국불교에서는 이른바 범계승으로 이루어진 범계승카르텔이 형성된 것입니다.

 

범계승카르텔은 견고합니다. 이익을 위하여 똘똘 뭉쳐진 일종의 이익공동체 내지는 이익결사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공통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가지 이상 허물이 있는 자들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도박, 폭행, 은처, 횡령, 부정선거 등 한 가지 이상 허물을 가진 자들이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위하여 뭉쳐진 일종의 암묵의 범계승카르텔이라 볼 수 있습니다.

 

종교인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분노

 

수행승이 여법하지 않을 때 비난받았습니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수행승이 탁발 나갔을 때 천대로 나타납니다. 숫따니빠따 천한 사람의 경에서는 “까까중아, 거기 섯거라. 가짜 수행자여, 거기 섰거라. 천한 놈아, 거기 섰거라. (tatreva muṇḍaka tatreva samaaka tatreva vasalaka) (Sn1.7) 라는 식으로 표현 됩니다. 여기서 까까중은 ‘muṇḍaka’를 번역한 것으로 ‘shaven-headed’의 뜻이고, 천한 놈은 ‘vasala’를 번역한 것으로 ‘an outcast; a person of low birth’의 뜻입니다. 부처님 당시 바라문 자제들이 부처님 교단으로 출가하자 가족 바라문들이 화가 나서 까까중이나 천한 자로 부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천한 자라고 하는 것은 바라문 입장에서 보았을 때 천민이 교단에 들어 갔기 때문에 머리 깍은 자를 보면 모두 천한 자로 본 것입니다.

 

바라문들은 부처님을 모욕했습니다. 부처님도 삭발수행자였기 때문입니다. 사성계급의 정점에 있었던 바라문은 부처님의 교단에 노예출신도 있어서 부처님을 노예출신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또 출가자 중에는 여법하지 않은 자들도 있기 때문에 바루를 들고 걸식하는 자들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분노도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종교인에 대하여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분노의 대상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종교인들은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청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범계승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공동체로 전락했을 때 세상사람들의 시선은 차라리 저주에 가까울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출가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까요? 그럼에도 마치 회사직원 채용광고 하듯이 조계종에서는 출가를 권유하는 포스터가 인터넷에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화장터에서 타다만 나무토막처럼

 

스님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사회의 모범이 되어 사회를 이끌어 가야 하나 정반대로 세상사람들이 승가집단을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승가집단이 청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출가해서는 안될 자들이 머리를 깍고 승복을 입고 있는 것도 주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출가동기라든가 출가목적이 불분명 했을 때 이익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하는 무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반승반속의 삶에 대하여 양쪽 끝이 타다 남은 태워진 화장용 장작은 마을에서 목재로 사용할 수 없고 숲에서도 목재로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S22.80)이라 했습니다. 반승반속의 무리들이 그렇습니다. 승도 아니고 속도 아닌 그들은 화장터에서 타다만 나무토막처럼 악취나는 자들입니다.

 

반승반속의 무리들은 소떼의 뒤를 따르는 당나귀와 같습니다. 삭발을 하고 승복을 입어서 겉으로는 스님인 것처럼 보이지만 승도 속도 아닌 자들입니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자들입니다. 불행하게도 한국불교에서는 승도 아니고 속도 아닌 반승반속의 무리들에 의하여 접수되었습니다.

 

한국불교는 쇠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자승종권 8년 동안 한국불교에서는 무려 3백만명의 신도들이 빠져 나갔습니다. 자승원장 보다 허물이 훨씬 더 많은 설정원장 하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신도들이 빠져 나갈지 모릅니다. 아무리 주변환경이 나빠졌다고는 하지만 가장 큰 책임은 승가에 있습니다. 여법하고 법답고 정의로운 승가공동체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재물의 상속자와 가르침의 상속자

 

한국불교에서 승가공동체는 붕괴되고 있습니다. 허물이 많은 자들의 범계승공동체가 지속 되는 한 붕괴는 더욱 더 가속화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에는 승가가 범계승들의 이익공동체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가르침 보다는 재물에 눈이 먼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나의 가르침의 상속자가 되어야 하며 재물의 상속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연민의 마음에서 그대들에 대해 ‘어떻게 나의 제자들이 재물의 상속자가 아니라 가르침의 상속자가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수행승들이여, 만약 그대들이 재물의 상속자가 되고 가르침의 상속자가 되지 않는다면, 그대들은 그것 때문에 ‘스승의 제자들은 재물의 상속자이지 가르침의 상속자가 아니다.’라고 평가될 것이고 나도 역시 그것 때문에 ‘스승의 제자들은 재물의 상속자이지 가르침의 상속자가 아니다.’라고 평가될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나의 가르침의 상속자가 되고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않는다면, 그대들은 그것 때문에 ‘스승의 제자들은 가르침의 상속자이지 재물의 상속자가 아니다.’라고 평가될 것이고, 나도 역시 그것 때문에 ‘스승의 제자들은 가르침의 상속자이지 재물의 상속자가 아니다.’라고 평가될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나의 가르침의 상속자가 되어야 하며, 재물의 상속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연민의 마음에서 그대들에 대해 ‘어떻게 나의 제자들이 재물의 상속자가 아니라 가르침의 상속자가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M3)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침의 상속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재물의 상속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욕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탁발 하여 남은 음식이 있을 때 이를 탐내는 자가 있다면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탁발음식도 일종의 재물이기 때문에 재물의 상속자가 됩니다. 그런데 남은 음식에 대하여 욕심을 내지 않고 굶는 자가 있다면 욕망을 여읜 것이기 때문에 가르침의 상속자가 됩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재물의 상속자가 되기 쉽습니다. 탁발음식을 탐내는 자는 더 많은 재물을 탐내는 것과 같기 때문에 재물의 상속자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 한국불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절대로 유산 상속하지 말자

 

범계승들은 부를 축적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종단의 요직을 독차지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위 돈이 되는 사찰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사유지라 하여 등산로를 막아 놓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문화재관람 명목으로 입장료 수입을 챙기고 있습니다. 또 문화재보호 명목으로 국가에서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습니다. 조상이 물려 준 문화유산과 막대한 토지를 차지하여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유산상속자 같습니다.

 

어떤 이는 절대로 유산을 상속하지 말자고 합니다. 자식에게 많은 유산을 남겨 주었을 때 득 보다는 해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유산으로 인하여 형제사이에 소송 등 재산분쟁이 일어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송이 일어나면 인간정신이 말살되어 가족공동체가 붕괴됩니다. 이럴 경우 차라리 없느니만 못합니다. 그래서 유산상속하지말기 운동을 벌이는 사람이나 단체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불교에는 조상들이 물려준 문화유산과 막대한 토지가 있습니다. 특히 문화유산은 한국불교가 1700년 동안 축적된 것으로서 우리나라 전체 문화재의 약 70%가량을 차지합니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불교문화유산은 국민들 모두의 유산입니다. 그럼에도 큰 도둑 같은 반승반속의 무리들에 의하여 모두 독차지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르침의 상속자들이 아니라 재물의 상속자들입니다.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 주기 보다 지혜를 물려 주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그렇게 했습니다.

 

세상을 아주 싫어하여 떠나라

 

부처님은 라훌라에게 가르침을 상속했습니다. 율장 대품에 따르면 야소다라왕비는 어린 라훌라에게 “라훌라야, 이 분이 아버지이다. 유산을 달라고 해라.(Vin.I.72)라 했습니다. 부처님이 정각을 이룬 후에 처음으로 까삘라밧투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곱 살 가량의 라훌하는 어머니의 말대로 수행자여, 제게 유산을 주십시오. 수행자여, 제게 유산을 주십시오.”라 말하며 뒤를 쫄쫄 따라 다녔습니다. 부처님은 한나라의 태자이었기 때문에 막대한 재물이 없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상 왕국 전체가 유산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사리뿟따존자에게 싸리뿟따여, 그렇다면 그대가 왕자 라훌라를 출가시켜라.”라고 말했습니다.

 

부처님은 유산을 달라고 조르는 라훌라를 출가 시켰습니다. 유산을 주는 것 보다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재물을 물려 주면 얼마 못가서 모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 가는 지혜를 물려 주면 자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라훌라에게 재물을 물려 주지 않고 가르침을 물려 주었습니다.

 

부처님은 라훌라에게 진리를 알려 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태어나지도 않고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죽는 일도 없는 불사(amata)’의 진리입니다. 이는 숫따니빠따 라훌라의 경(Sn2.11)’에서 세상을 아주 싫어하여 떠나라.”(Stn.340)라는 말로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윤회의 소용돌이에 아주 실망해서 모든 세상을 기뻐하지 않는 지각을 가져라”(Prj.II.343)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은 라훌라에게 재물을 상속해 준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상속해 주었습니다.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 시즌투(2)

 

한국불교는 반승반속의 무리들에 의하여 점거 되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유산상속자들입니다. 그들은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이제 재물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탐욕을 여의는 가르침의 상속자가 되어야 하나 거꾸로 탐욕에 기반한 재물의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탐욕스런 범계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한국불교의 추락은 가속화 될 것입니다. 이에 재가불자들이 다시 한번 뭉쳤습니다. 오늘 열린 2기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가 그것입니다.

 




2017 12 12일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금년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입니다. 영하13도라 하는데 체감온도는 영하20도 가량 되는 듯 합니다. 조계사일주문 앞에서 11 30분부터 열린 기자회견장에 약 한시간 가량 서 있었는데 무엇보다 발이 시러웠습니다. 두툼한 외투에 목도리까지 하고 장갑을 끼어 추위에 대비했지만 발시러운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입니다.

 




오늘 출범한 단체명칭은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입니다. 재가불교단체와 시민단체가 합한 것입니다. 조계종 적폐는 이제 불교의 적폐가 아니라 국민들의 적폐라는 것과 같습니다. 불교단체와 시민단체가 다시 뭉쳤는데 요즘 말로 하면 시즌투(2)’라 볼 수 있습니다.

 

재물의 상속자에서 가르침의 상속자로

 

조계종 적폐청산 시즌2에서는 외연을 대폭확장 했습니다. 재가불교단체 뿐만 아니라 민변, 민언련, 민노총 등으로 시즌1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폭이 넓어진 것입니다. 불교적폐는 곧 국민적폐이기 때문에 시민단체와 연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릅니다. 또 하나 시즌2에서 추진코자 하는 것은 종교간 연대입니다. 불교뿐만 아니라 개신교, 천주교에도 적폐가 만연 되어 있기 때문에 종교간 연대를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가량 되는 날 일부로 조계사일주문으로 갔습니다. 매서운 칼바람에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 추웠지만 불교지식인들과 현장활동가들은 시즌1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뭉쳤습니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난 여름 뜨거운 햇볕아래에서 자발적으로 피켓을 들고 가을 밤에 밤을 밝히는 촛불을 들었던 것처럼 자발적으로 모인 것입니다. 재물의 상속자가 된 한국불교에서 가르침의 상속자가 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2017-12-1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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