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평화와 평등의 가르침
1. 시자 아난다
부처님 곁에는 가사와 발우를 들어드리고 찬물과 더운물을 준비하는 제자가 늘 있었다. 그 임무를 실천한 첫 번째 시자는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은 안냐꼰단냐였다. 이후 안나꼰단냐는 고향 도나왓투에서 교화를 펼쳤고, 그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났던 이가 여동생 만따니(Mantāni)의 아들 뿐나(Puṇṇa)였다. 사리뿟따가 그의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가 대론할 만큼 뿐나는 명석하고 설법에 뛰어난 비구였다. 그가 연로한 스승 안나꼰단냐를 대신해 부처님을 시봉하였다.
그 후 사까족 왕자 출신인 나가사말라(Nagasamāla), 꼬살라의 바라문 마을 잇차낭갈라(Icchānangala)에서 머물 때는 나기따(Nāgita), 릿차위 왕자 출신인 수낙캇따1(Sunakkhatta), 사리뿟따의 동생인 쭌다(Cunda), 라자가하의 깃자꾸따에서 머물 때는 사가따(Sāgata), 마가다국의 망꿀라(Mankula)산에 머물 때는 라다2(Rādha), 짤리까(Cālicā)에서 머물 때는 메기야(Meghiya), 사왓티(Sāvatthī)에서 머물 때는 우빠와나3(Upavāna)가 부처님을 시봉하였으며 이외에도 많은 제자들이 그 임무를 감당하였다.4 하지만 그들 모두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시문에 탁월한 재능이 있고 학식이 많았던 수낙캇따(Sunakkhatta)는 신통을 가르쳐주지 않고, 세상의 기원 등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했을 때 부처님이 침묵한다는 이유로 니간타로 개종하기도 하였다. 그후 수낙캇따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부처님을 비방하였다.
“고따마는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지 못했고, 거룩한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특출한 지견도 없다. 고따마는 논리적 추리와 탁월한 말재주만 가졌을 뿐이다.”
또 짤리까 인근 산에서 안거할 때였다. 메기야(Meghiya)는 시중드느라 수행할 시간이 부족하고, 그래서 자신의 수행이 진척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메기야는 한발이나 나온 입으로 부처님에게 말했다.
“부처님, 끼미깔라(Kimikālā)강변에 그늘이 짙은 망고나무숲이 있습니다. 그 망고나무숲에서 혼자 수행해 보고 싶습니다.”
“메기야, 나 혼자 있구나. 다른 비구가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라.”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이미 할 일을 마치셨지만 저는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그는 세 번이나 간청하였고, 결국 부처님도 허락하셨다. 메기야는 '나도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저 숲에서 나오지 않으리라' 맹세하고 망고나무숲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초췌한 얼굴로 돌아왔다. 부처님은 그런 메기야를 탓하지 않으셨다.
“메기야, 진리의 길을 가고 그 열매를 따도록 너를 차례차례 성숙시켜 줄 다섯 가지 법이 있다. 첫째, 훌륭한 벗을 가까이해야 한다. 둘째, 계율을 온전히 지켜야 한다. 셋째, 좋은 법문을 자주자주 들어야 한다. 넷째,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 예리한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나가사말라(Nagasamāla) 역시 시자의 임무를 수행하며 오점을 남긴 비구였다. 꼬살라를 유행할 때였다.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를 들고 뒤를 따르던 나가사말라가 갈래길이 나오자 부처님께 말하였다.
“부처님, 왼쪽 길로 가시지요.”
“나가사말라, 오른쪽 길로 가자.”
나가사말라는 왼쪽 길로 가자고 세 번을 청하였고, 부처님은 세 번을 거절하셨다. 그러자 그는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자기가 원하던 왼쪽 길로 혼자 가버렸다. 얼마 후 헐레벌떡 돌라온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찢어진 가사에 발우는 깨어지고 여기 저기 상처투성이였다. 길에서 도적을 만났던 것이다.
깨달음을 얻으신 후 20년, 기원정사에 머물던 여든 명의 장로가 모두 부처님이 계시는 향실로 모였다.
“어떤 비구는 나를 버려두고 가고, 어떤 비구는 발우와 가사를 땅바닥에 내려놓기도 한 일이 있다. 내 나이도 이제 적지 않다. 항상 나를 따르며 시중들어줄 한 사람을 선출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장로 사리뿟따가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시중을 들겠습니다.”
“사리뿟따, 그만두어라. 그대 또한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가 아닌가. 그대가 머무는 곳에선 법문하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런 그대에게 이 일은 적당치 않다.”
장로들이 차례차례 시자가 되길 청했지만 부처님께서 모두 거절하셨다. 마지막으로 아난다에게 차례가 돌아왔다.
“그대는 왜 시자가 되길 청하지 않는가?” 부처님께서 물으셨지만 아난다는 침묵하였다.
아난다는 부처님께서 세 차례나 물은 뒤에야 일어나 합장하고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보시 받은 옷을 저에게 주지 않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발우에 공양 받은 음식을 저에게 주지 않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거처하는 방에서 함께 지내자고 하지 않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초대받은 자리에 저를 데려가지 않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제가 초대받은 자리에 부처님께서 동행해 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먼 곳에서 사람이 찾아왔을 때 언제든 데려오도록 허락하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제게 의심하는 것이 있을 때 언제든 질문하도록 허락하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제가 없는 자리에서 하신 법문을 제가 돌아왔을 때 다시 설해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훌륭하구나, 아난다. 너의 뜻대로 하리라.”
- 수낙캇따(Sunakkhatta) : 릿차위(Licchavi)족의 왕자 출신으로 붓다의 시자로 있다가 웨살리에서 가사와 발우를 반납하고 외도 꼬랏캇띠야(Korakkhattiya)의 제자로 개종해 갔다. 한역으로는 선성(善星)이라 번역하는데, 수낙카(Sunakha)란 개라는 뜻이고, 꼬랏캇띠야(Korakkhattiya)란‘안짱다리 캇띠아’란 별명이고, 원이름은 박가와(Bhaggava)라고 했다. 박가와는 붓다가 출가하여 처음 만난 고행주의자였다. 수낙캇따의 개종에 대하여 디가니까야 [마할리경(Mahālisutta) DN6]과[빠띠까경(Pāṭikasutta) DN24]에 언급되어 있다. [본문으로]
- 라다(Rādha):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비구들이 그의 출가를 거부했으나 붓다의 허락으로 사리뿟다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빠띠바니아 테라(Paṭibhāniya thera, 다시 말해 즉설연설의 일인자)로 전해진다. 붓다와 라다의 대화는 주로 마라(Māra) 즉 악마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본문으로]
- 우빠와나(Upavāna): 붓다가 위경련을 일으켰을 때 데와히따(Devahita)의 집에 가서 따뜻한 물과 꿀을 얻어다 통증을 가라앉히기도 했다. 아난다가 시자가 되기 전까지 붓다의 시자였다. 그러니까 아난다가 시자가 되기 전에 8명의 비구들이 붓다의 시자를 했다. [본문으로]
- 부처님은 45년 전법 기간중에 초기20여년은 주로 마가다국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를 유행하시면서 전법하셨다. 그리고 후기 20여년은 주로 꼬살라국의 사왓띠 기원정사를 중심으로 머무시면서 전법하셨습니다. 아난다존자가 부처님의 마지막 시자가 되신 것이 바로 이 무렵의 일로 보통 부처님 성도후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 아난다존자가 시자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부처님은 성도 후 20여년은 특별한 시자를 거느리시지 않고 때와 형편에 따라 여러 제자들이 번갈아가며 부처님을 시봉하였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때의 이런 시자들은 나가사말라(Nāgasamāla), 나기따(Nāgita), 우빠바나(Upavāna), 수낙캇따(Sunakkhatta), 사가따(Sāgata), 라다(Rādha), 메기야(Meghiya), 쭌다(Cunda) 사미(沙彌) 등 여덟 명이 있다. 이 여덞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리불존자는 앗사지존자의 연기법게송을 듣고 예류자를 얻고 목련존자와 함께 출가하였는데 15일쯤 되던 날에 사리불존자의 삼촌이 찾아와 부처님께 법을 들었다. 이때 사리불존자는 부처님 뒤에서 부채를 부쳐드리고 있었는데, 부처님이 자신의 속가 삼촌에게 해주신 설법을 듣고 아라한이 되셨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경에 보면 다른 여러 제자들도 이렇게 사리불존자같이 부처님을 시봉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부처님이 20여년이 지난후 아난존자를 시자로 두게 되신 이야기는 경에 나온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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