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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야산 꼭대기에서 : 우루벨라 설법(상두산 설법)

moksha 2017. 5. 16. 23:07

6. 가야산 꼭대기에서

 

마가다국의 가장 큰 교단이 부처님께 귀의하여 개종하는 큰 사건이었다. 부처님은 천 명의 제자와 함께 마가다의 수도 라자가하로 향했다. 우루웰라에서 가야로 넘어가는 길목, 코끼리 머리처럼 평평한 바위가 있는 가야산 정상에서 잠시 쉬던 때였다. 아래를 굽어보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온 세상이 불타고 있다.1

평생 불을 섬기며 관찰해 온 깟사빠 삼형제였다. 그들은 누구보다 불의 성질을 잘 알고 있었다. 우루웰라깟사빠가 때를 놓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여쭈었다.

“온 세상이 불타고 있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모든 시선이 부처님에게 쏠렸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눈이 불타고 있다. 눈에 보이는 빛깔과 형상이 불타고 있다. 눈의 분멸이 불타고 있다. 눈과 그 대상의 접촉이 불타고 있다. 눈과 대상의 접촉에서 생기는 즐겁고 괴로운 느낌들이 불타고 있다.

비구들이여, 무엇 때문에 불타는 것인가? 탐욕의 불ㆍ분노의 불ㆍ어리석음의 불 때문이다. 그 까닭에 늙음의 불길ㆍ질병의 불길ㆍ죽음의 불길ㆍ걱정의 불길ㆍ슬픔의 불길ㆍ고뇌의 불길이 치솟고 있는 것이다. 귀에서도 코에서도 혀에서도 몸에서도 나아가 마음에서도 불길이 훨훨 타오르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관찰할 수 있는 현명한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눈으로 보는 빛깔과 형상에 대해서도, 눈과 대상의 접촉에 대해서도, 그 접촉에서 생기는 즐겁고 괴로운 느낌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은 집착을 벗어나 마음의 해탈을 얻는다.

탐욕의 불ㆍ분노의 불ㆍ어리석음의 불에서 벗어나 마음이 해탈한 이는 '나는 이미 해탈했다'고 자각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그는 '나의 생은 이미 다했고, 청정한 수행은 이미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을 다 마쳤다. 이제는 더 이상 윤회의 굴레에 속박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1. 깟사빠 삼형제(첫째 우루웰라 깟사빠(Uruvelākassapa)와 그의 제자 500명과 둘째 나디깟사빠(Nadīkassapa)와 300명 그리고 셋째 가야깟사빠(Gayākassapa)와 200명)는 불을 섬기는 배화교도(拜火敎徒)였다. 부처님은 깟사빠 삼형제의 귀의 후에 부처님은 천 명의 제자와 함께 마가다의 수도 라자가하로 향했다. 우루웰라에서 가야(Gayā)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코끼리 머리처럼 평평한 바위가 있는 가야산 정상[가야시사(Gayāsīsa), 상두산(象頭山)]에서 불에 대한 법문으로 ‘연소에 대한 법문의 경(Ādittapariyāyasutta, S35:28)’을 설하셨다. 이 법문을 우루벨라 설법 혹은 상두산(象頭山)설법이라고도 한다. 이법문은 여래의 첫 번째 설법인 가르침의 수레바퀴에 대한 경[Dhammacakkappavattana Sutta, 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 S56:11], 두 번째 설법인 무아의 특징경[Anattalakkhaṇa sutta, 무아상경(無我相經), S22:59]에 이은 여래의 3번째 법문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