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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승불교의 흥기

moksha 2017. 4. 27. 21:33

2. 대승불교의 흥기

 

(1) 초기의 대승불교 (BC 1세기 경)

   1) 초기 대승불교의 특징

     ① 새로운 보살의 개념

     ② 6바라밀의 실천을 중시

     ③ 보리심의 자각(누구든지 깨달을 수 있음)

     ④ 새로운 불타관[보신불(報身佛) 사상]

     ⑤ 공(空)사상

     ⑥ 주객을 초월한 반야의 지혜

     ⑦ 이타주의(利他主義) : 서원과 중생구제

     ⑧ 재가불교

 

아비달마불교

초기 대승불교

성문사상(聲聞思想)-아라한과(阿羅漢果)

보살사상(菩薩思想)-불과(佛果)

타율주의(他律主義)

자율주의(自律主義)

업과사상(業果思想)

행원사상(願行思想)

자리주의(自利主義)-소승(小乘)

이타주의(利他主義)-대승(大乘)

유사상(有思想)

공사상(空思想)

이론적(理論的)

실천적(實踐的)

전문적 출가불교(出家佛敎)

일반적 재가불교(在家佛敎)

 

2) 다수의 불・보살이 출현

   ① 마이트레야(=미륵)는 메시아적 성격이 강조되고,

   ② 아미타불의 서방정토 신앙, 문수보살, 관음보살 등이 신앙의 대상으로 등장.

 

3)대승교의 시대적 구분

구분 

시 기

특 징

초기

1세기경~3세기중엽

(용수 이전)

대승사상이 가장 신선하고 순수했던 시기

중기

3세기 말~6세기 말

(용수)~(세친)

철학적・학문적 연구 활발했으나 실천적인 수행은 소홀해져서 불교가 차츰 쇠퇴하고 인도의 전통 종교인 힌두교가 차츰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후기

6세기말~7세기 말

밀교(密敎) 즉 금강승(金剛乘) 성립

(7세기 경~8세기 경)

7세기~13세기 초

실천보다는 학문적인 면에 치우쳐 대중과 완전히 유리되기 되자 그 열세를 만회하고 대중에게 영합하기 위해 힌두교와 융합해서, 그 당시 인도의 풍조였던 신비주의적이고 주술적인 면에 치중하게 되었다. 이런 실질적인 외적 체험보다도 내면적인 신비주의는 마침내 새로운 불교 즉 밀교시대를 열게 되었다.

 

(2) 초기의 대승경전

   1) 대승경전의 출현 시기 : 기원전 1세기후~ 3세기

   2) 주요 경전 : 반야경, 유마경, 법화경, 아미타경, 십지경 등

   3) 공(空)사상에 입각한 새로운 불교해석은 대승불교의 기본적 교리로서 이후 불교사상을 새로운 차원으

       로 이끌었음.

 

(3) 용수와 중론

   1) 용수(龍樹, 나가르쥬나 Nāgārjuna)

       A.D 150~250년경 남인도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브라만의 교학을 배웠으나 불교에 입문한 뒤 소승ㆍ

       대승 교리에 통달했다고 하며, 대승사상을 체계화하였다. 그의 사상적 업적은 크게 3가지로 대변할

       수 있는데

① 중론(中論) 등의 저술을 통해 반야경의 공사상을 체계화했으며,

② 공관(空觀)의 입장에서 논증 방법을 확립했고,

③ 대승경전에 관한 저술로 대승불교 사상에 포괄적 체계를 형성했다.

 

그는 [중론(中論)]에서 연기(緣起)를 8가지로 부정하고 8부중도(8不中道) 고정적 견해에 집착하는 것을 철저히 타파하였다. 이 부정의 근거를 공에 두고 ‘연기 = 무자성(無自性)=공'이 곧 제법의 실상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공도 또한 가설이라고 하여 유(有)와 무(無)의 양 극단을 떠난 중도를 설하였다. 용수는 재래의 대승사상을 종합하여 다방면에 걸쳐 활약하였으므로 그를 8종(八宗 : 삼론종, 유식종, 천태종, 화엄종, 정토종, 선종, 율종, 밀종)의 조사(祖師)라고 일컫고 있다.

아리아데바(=제바提婆)는 용수의 학설을 이어받고 공사상을 내외로 선양하였다. 용수의 [12문론], [중론] 아리아데바의 [백론]을 삼론(三論)이라 하며, 이에 의해 중국의 삼론종(三論宗)이 형성되었다.

용수의 중론을 소의론(所依論)으로 하는 학파를 중관파(中觀派)라 한다.


☞참조:사론(四論) 〓 [중론]+[12문론]+[백론]+[대지도론]


삼론종(三論宗)

용수(龍樹)의 중론(中論), 십이문론(十二門論)과 제바(提婆)의 백론(百論) 등을 주요경전으로 삼고 성립된 불교의 종파로서 성종(性宗)․공종(空宗)․파상종(破相宗)이라고도 한다. 인도 대승불교의 중관계(中觀系)ㆍ유가계(瑜伽系) 가운데 중관계에서 시작되어 중국에서 크게 번창하였다. 제법공무상(諸法空無相)ㆍ팔부중도(八不中道)의 교리를 내세우고, 용수를 시조로 하여(그 전에 석가․문수․마명이 있다) 제바ㆍ라후라(羅候羅)․청목(靑目) 등으로 계승된 다음, 구마라습(鳩摩羅什)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와 그의 제자 도생(道生)ㆍ승조(僧肇)ㆍ도융(道融)ㆍ승예(僧叡) 등에 의하여 종지(宗旨)가 크게 선양되었으나, 후에 남북으로 갈라져 한때는 교세가 부진하였다. 그 후 길장(吉藏)에 이르러 종래의 학풍을 일변시켰고 또 삼론현의(三論玄義) 등이 성립됨으로써 삼론종학이 대성하였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불교를 전한 순도(順道)가 이 종파였으므로 고구려에서 크게 발달하였고, 뒤에 신라의 원효가 삼론학의 종요(宗要)를 지었으며, 백제에서는 혜현(慧顯)이 삼론을 강설하였다. 또 고구려의 혜관(慧灌)은 625년(고구려 영류왕 8) 일본에 건너가 일본 궁중에서 삼론을 강설하였으며, 이보다 앞선 595년에는 혜자(惠慈)가 도일하여 황태자 쇼토쿠태자[聖德太子]의 스승이 되어, 같은 해 백제에서 건너간 혜총(慧聰)과 함께 새로 낙성된 호코사[法興寺]에서 삼론을 강설하였다.

  

중관파(中觀派)

용수(龍樹)의《중론(中論)(중관론의 약칭)을 근저로 하여 반야 공관(般若空觀)을 선양한 학파로서 후에 유식(唯識)을 설하는 유가행파(瑜伽行派)와 함께 인도 대승불교의 2대 사상이 되었다.《중론의 설은 모든 존재가 연기성(緣起性)이기 때문에 그 자체의 고유한 자성(自性)이 없으므로 공(空)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공은 유․무의 극단이 없는 것이므로 중도라는 것을 올바르게 관찰하는 데에 깨달음이 있다고 한다. 용수의 제자 제바(提婆)는 《백론(百論)》등을 저술하여 외도(外道)와 소승의 교의를 논파하고, 제바의 제자 나후라발타라(羅候羅跋陀羅)는 《중론의 팔불(八不)의 의의를 주석하였다.

그러나 중관파가 학파로서 명확한 형태를 취한 것은 불호(佛護) 시대부터인데, 고학의 근본은 무에 집착하는 일이 없는 공의 입장이다. 불호 이후 공의 인식방법에 대한 의견이 엇갈려 2파로 나뉘었는데, 불호의 계통인 필과성공파(必過性空派) 또는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와 청변(淸辨)으로 대표되는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이다. 전자로부터는 월칭(月稱)이 나와 중론의 주석서《Prasannapad를 쓰고,《중관에의 입문을 저술하였는데, 그의 사상은 티베트에 널리 유포되었다. 후자에는 같은 시기에 관서(觀誓)가 나오고, 또한 이어서 적천(寂天)도《대승집보살학론(大乘集菩薩學論)《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등의 중요한 논서를 저술하였다.

8세기에는 적호(寂護), 연화계(蓮華戒)가 중관파와 유가행파를 종합한 입장에서 중관파(유가행중관파:瑜伽行中觀派)를 발전시켰다. 또한 그 계통은 티베트로 전파되어 번영하였는데, 그 대표자가 아티샤(982~1055)이고, 중국에서는 용수의《중론》《십이문론(十二門論)》, 제바의《백론》을 소의(所依)로 하는 삼론종(三論宗)이 발전하였다.


용수(龍樹:나가르주나 Nāgārjuna) (AD 150~250)

원이름 나가르주나(나가 Nāga:용龍, 아르주나 arjuna:나무 이름) 남인도 출생. 북인도로 가서 당시 인도의 사상(思想)을 공부하고, 불교 특히 신흥 대승불교(大乘佛敎)사상을 연구, 그 기초를 확립하였다. 때문에 제21의 서가(書家), 8종(八宗, 삼론종, 유식종, 천태종, 화엄종, 정토종, 선종, 율종, 밀종)의 조사(祖師)라고 일컫는다.

중론(中論)에서 전개한 공(空)의 사상은 그 이후의 모든 불교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즉, 실체(實體:自性)를 세우고, 실체적인 원리를 상정(想定)하기 위한 바람직한 자세를, 철두철미한 비판을 가하면서, 일체의 것이 다른 것[他]과의 의존ㆍ상대ㆍ상관ㆍ상의(相依)의 관계[연기(緣起)] 위에서만 비로소 성립된다고 주장하였다. 그 상관관계는 긍정적․부정적․모순적 상태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어느 것에서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공의 상태에 이를 수 없는 반면, 구극(究極)의 절대적 입장[진제(眞諦)ㆍ제일의제(第一義諦)]은 우리의 일상적 진리[속제(俗諦) 즉, 세속제(世俗諦)]로만 성립할 수 있으며, 이를 초월해서는 논의의 대상이나 표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침이 없는 중도적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후세에 그의 학파를 가리켜 중관파(中觀派)라고 불렀다.

주요 저서에 중론(中論) (4권) 외에 회쟁론(廻諍論)ㆍ광파론(廣破論)ㆍ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공칠십론(空七十論)등이 있으며, 대지도론(大智度論)(100권) 십이문론(十二門論)등은 그의 저작설에 의문점이 있다.


데바(제바:提婆:Deva) (A.D. 170-270)

2~3세기 인도의 불교학자. 원명은 데바 또는 아리아데바이고, 제바는 그 음역(音譯)이다. 보통 성천(聖天)이라고 번역한다. 용수(龍樹)의 제자로서 대승불교, 특히 스승이 가르친 공(空)의 사상을 터득하고, 스승을 내세워 중관파(中觀派)를 일으켰다. 외도(外道)의 설을 낱낱이 논파하였는데, 그 논법이 너무나 날카로웠기 때문에 원한을 사 암살되었다고 전한다.

저서 가운데 백론(百論)이 특히 유명하며, 이 밖에도 광백론(廣百論)ㆍ백자론(百字論)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