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꼬삼비 빅쿠들의 분쟁
깨달음을 이루신 후 9년, 꼬삼비(Kosāmbī) 고씨따라마(Gositarāma)에서 그해 우기를 보내신 다음이었다. 두 패로 갈라선 비구들이 서로를 욕하고 심지어는 주먹질가지 하는 큰 분쟁이 꼬삼비 승가에서 일어났다. 사건의 발단은 사소하기 그지없었다.
어느 날 경전을 가르치는 장로가 화장실에 갔다가 쓰고 남은 물을 버리지 않고 그냥 남겨두게 되었다. 마침 다음에 화장실을 사용한 사람이 계율을 가르치는 장로였다. 계율을 가르치는 장로는 경전을 가르치는 장로에게 말했다.
“스님께서 바가지 물을 버리지 않고 그냥 남겨 두었습니까?”
“예, 제가 남겨두었습니다.”
“화장실에서 사용하던 물을 남기면 참회해야 될 허물이란 건 아십니까?”
“아,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면 뭐 허물이랄 것도 없지요.”
장로들끼리 서로를 낮춤으로써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계율을 가르치던 장로는 경전을 가르치던 장로의 허물을 자신의 제자에게 말해버렸다. 이야기는 순식간에 대중에 퍼졌고, 무리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나약한 이들의 교만이 고개를 들게 되었다. 계율을 배우던 이들은 경전을 배우던 이들을 비아냥거렸다.
“스님들의 스승은 자기가 저지른 허물조차 모르나 봅니다.”
스승을 욕하는 소리에 경전을 배우던 이들 역시 발끈하였다.
“허물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이제와 허물을 들먹거린단 말이오? 이렇게 말했다. 저렇게 말했다 하는 걸 보니, 당신들 스승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군요.”
두 장로의 사소한 실수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불길로 번졌다. 부처님께서 양쪽의 장로를 찾아가셨다 그리고 계율을 가르치던 장로에게 “계율의 적용에 앞서 교단의 화합을 중시해야 한다.”고 타이르고, 경전을 가르치던 장로에게 “아무리 사소한 호물이라도 참회하지 않고 묻어두어서는 안 된다.” 고 간곡히 타이르셨다. 하지만 소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동조하는 세력을 규합한 두 무리는 거처를 달리하고, 포살을 비롯한 갖가지 승가의 행사까지 달리 행하였다. 일정 지역에 거주하는 승가가 두 곳에서 포살을 시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사 안과 정사 밖에서 부딪칠 때마다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던 그들은 급기야 폭력까지 행사하게 되었다. 게다가 각기 지지하는 우바새와 우바이들까지 합세해 꼬삼비의 정사(精舍)에는 고함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싸움을 그만두어라. 다투지 말라. 논쟁하지 말라. 원한은 원한에 의해 풀어지지 않는다. 원한은 원한을 버림으로써만 풀어진다.”
나라를 빼앗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까지 죽이려한 브라흐마닷따(Brahmadatta)왕을 용서한 디가우(Dighāvu)1왕자 이야기를 들려주며 부처님은 간곡하게 타일렀다.
“비구들이여, 먼 옛날에 까시(Kāsi)의 왕 브라흐마닷따(Brahmadatta)가 수도 베나레스(Benares, 바라나씨 Bāraṇasi)에서 자신의 왕국을 통치하고 있었다. 브라흐마닷따 왕은 디가우(Dighāvu)의 아버지인 디기타가 왕으로 있는 꼬살라(Kosalā) 국을 공격했다. 디기타 왕은 전쟁에 이길 승산이 없자 아내와 함께 몰래 성문을 빠져나와 베나레스로 가서 유행자로 변장하여 살았다. 그러나 예전에 자신의 이발사가 브라흐마닷따 왕에게 그들을 밀고하였다. 왕은 그들 부부를 붙잡아 밧줄에 묶은 채 큰 길로 끌고 다니다가 살해하였다.
디기타 왕은 죽음을 맞이하면서 아들인 가우디 왕자에게 ‘너는 절대로 브라흐마닷따 왕에게 원한을 품지 말며 복수하려고 하지마라. 원한은 원한에 의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자애와 연민에 의해서 원한은 사라진다.’라고 신신당부하였다.
디가우 왕자는 뒷날 브라흐마닷따 왕의 측근이 되었다. 그는 왕과 함께 사슴사냥을 나갔는데 왕이 피곤하여 자신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원한에 사무친 그는 검을 빼어들고 왕을 죽이려고 했지만 아버지 유언을 기억하며 검을 내리치지 못하고 분노를 참아냈다. 왕이 깨어나자 그는 자신이 디기타 왕의 아들 디가우임을 밝히고 서로 해치지 않기로 약속하였다. 왕은 자신이 정복한 꼬살라 왕국을 디가우에게 돌려주고 딸과 결혼시켰다.
디가우 왕자는 브라흐마닷따 왕의 딸과 결혼하여 잃었던 나라를 되찾고 까시와 꼬쌀라 두 왕국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분노와 교만에 들뜬 양쪽 비구들은 똑같은 말로 부처님의 권유를 무시하였다.
“세존이시여,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걱정 마시고 잠시 물러나 계십시오. 이 문제는 저희들끼리 해결하겠습니다.”
물러설 줄 모르는 비구들을 찾아가 부처님은 또 타일렀다.
“수족을 자르고, 목숨을 빼앗고, 소와 말과 재산을 훔치고, 나라를 약탈하는 도둑패거리도 뭉칠 줄 아는데 너희들은 왜 그렇지를 못하느냐.”
세 번의 간곡한 타이름에도 꼬삼비 비구들은 멈추지 않았다. 부처님은 말없이 그곳을 떠나셨다. 시자에게도 알리지 않고 홀로 길을 떠나셨다. 부처님은 꼬삼비 근처의 발라깔로나까라(Bālakaloṇakāra) 마을에서 왁꿀라(Vakkula)를 만나 홀로 떨어져 수행에 매진하는 공덕을 칭찬하셨다. 그리고 다시 아누룻다(Anuruddha)ㆍ낌빌라(Kimbila)ㆍ난디야(Nandiya) 세 사람이 함께 머무는 쩨띠(Ceti)의 빠찌나왐사다야(Pācinavamsadāya) 동산으로 가셨다. 그곳에 머무는 세 비구의 삶은 청정하고 아름다웠다. 이른 아침 가사를 단정히 입고 걸식을 나가고, 걸식에서 먼저 돌아온 사람이 공양할 방을 쓸고, 자리를 펴고, 발 씻을 물과 앉을 자리를 준비하였다. 공양이 많으면 깨끗한 그릇에 여분의 밥을 덜어 놓고, 마실 물과 그릇 씻을 물을 준비한 다음 혼자서 조용히 공양하고 방을 나갔다. 다음에 돌아온 비구는 자기 발우의 밥이 적으면 앞 비구가 담아놓은 밥을 덜어먹고, 앉는 자리와 발 씻는 자리를 거두고, 빗자루로 깨끗이 쓸고, 마실 물과 씻을 물과 화장실 물을 채워놓았다. 혼자서 하지 못할 일이 있을 때는 소리 내지 않고 손짓으로 도움을 청하였다. 그들은 숲의 짐승보다 조심스런 움직임으로 선정 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도우며 의지하는 그들은 닷새마다 한자리에 모여 진솔하게 법을 논하였다. 그런 세 비구를 보고 부처님은 큰 소리로 칭찬하셨다.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깨달음을 이루신 후 10년, 세 비구와 헤어진 부처님은 빠릴레이야까(Pārileyyaka)라는 외딴 마을로 가셨다. 그곳 깊은 숲 속 나무 아래에서 홀로 우기를 보내셨다. 부처님이 떠나신 후 꼬삼비 승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쏟아졌다. 꼬삼비의 우바새와 우바이도 승가를 비난하고 나섰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부처님의 간곡한 권유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을 더 이상 승가로 받들 수 없다며 한 끼의 공양조차 거절하였다. 사납게 타오르던 분쟁의 불길은 순식간에 잡혔다. 뒤늦게 후회한 꼬삼비 비구들이 백방으로 부처님을 찾아 나섰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사왓티의 승가가 나섰다. 빠릴레이야까 외딴 숲에 도착한 아난다는 비구들을 입구에 세워두고 혼자 숲으로 들어갔다. 넝쿨이 우거진 오솔길을 헤치던 아난다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다리가 기둥보다 굵고 상아가 칼날처럼 날카로운 커다란 코끼리 한마리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코를 높이 세우고 당장이라도 아난다를 밟아버릴 듯 앞발을 치켜들었을 때였다.
“빠릴레이야까, 그 비구를 막지 마라.”
그립던 부처님의 목소리였다. 코끼리는 힘차게 코를 흔들어 보이고 몸을 돌렸다. 코끼리를 따라 숲 가운데로 들어서자 넓은 그늘을 드리운 큰 나무가 나타났다. 그 아래 부처님이 앉아계셨다. 발우와 가사를 내려놓은 아난다는 거칠어진 부처님의 발아래 예배하였다. 코끼리도 그늘 가에 자리하였다. 아난다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오랜 침묵이 흐르고 부처님께서 도리어 위로하듯 말씀을 꺼내셨다.
“아난다, 무리를 벗어난 저 코끼리가 안거 동안 나와 함께 했단다. 이른 아침이면 나무 아래를 깨끗이 청소하고, 더위가 심할 때면 시원한 물을 뿌려주었단다. 크고 작은 과일들을 따다가 나에게 주고, 마을로 걸식을 나갈 때면 숲 입구까지 마중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단다.”
아난다는 송구스러워 그저 눈물만 흘렸다.
“혼자 왔느냐?”
“비구들과 함께 왔습니다. 원치 않으실 거란 생각에 입구에서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오라.”
함께 온 비구들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모든 존재에게 폭력을 쓰지 말고,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말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어질고 지혜로운 동반자, 성숙한 벗을 얻는다면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질고 지혜로운 동반자, 성숙한 벗을 얻지 못했거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좋은 친구를 얻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다. 훌륭하거나 비슷한 친구와 함께하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다. 그러나 그런 벗을 만나지 못했거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결박을 벗어난 사슴이 초원을 자유롭게 뛰놀듯,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고 떠나듯, 상아가 빛나는 힘센 코끼리가 무리를 벗어나 숲을 거닐듯, 물고기가 힘찬 꼬리고 그물을 찟듯 모든 장애와 구속을 벗어나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과 진흙이 묻지 않는 연꽃같이,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게송을 읊으셨다.
[Dhp1-6]
Pare ca na vijānanti :“mayam ettha yamāmase”
빠레 짜 나 위자난띠 마얌 엣타 야마마세
“우리가 여기서 (증오를)자제해야 한다.”라고 다른 사람들은 지각하지 못한다.
ye ca tattha vijānanti tato sammanti medhagā.
예 짜 땃타 위자난띠 따또 삼만띠 메다가
그러나 그것에 대해 지각하면 그로 말미암아 다툼이 사라진다.
부처님의 밝은 목소리에 용기를 얻은 아난다가 담아두었던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부처님, 사왓티의 빠세나디 대왕과 아나타삔디까 장자께서 부처님 뵙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모든 제자들이 선업을 키울 수 있도록 사왓티로 와주십시오.”
“아난다, 발우와 가사를 들어라.”
- 디가우(Dighāvu)왕자 이야기 : 꼬삼비 자따까(Kosambi Jataka, J428)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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