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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불교예술의 발전

moksha 2017. 4. 27. 22:35

Ⅵ. 불교예술의 발전

 

1. 불교예술의 발생과 발전

   (1) 기원과 발달

     1) 붓다의 성적지 : 정각의 땅인 붓다가야나 초전법륜의 땅인 녹야원 같은 곳이 중심

     2) 신앙의 터전인 사원을 중심

     3) 예배의 대상인 탑과 불상 등의 조성


   (2) 불교미술사의 시대 구분

     1) 고대기 (B.C. 5세기~ A.D.1세기) : 무불상기(無佛像期)로서 불탑(佛塔)의 건립이 주로 이루어졌다.

       ①석존 재세시의 기원정사(祗園精舍)와 죽림정사(竹林精舍)

       ②불탑과 아쇼카왕의 석주(石柱)

       ③중심지 : 남인도의 바르후트(Bharhut), 산치(Sanci), 남인도의 아마라바티(Amaravat) 등

 

     2) 쿠샤나기(기원후 1세기~5세기)

         간다라, 마투라와 같은 지역에서의 미술활동이 중심이며, 불상조성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

       ① 불상조각 (쿠샤나 왕조의 초기, 즉 기원후 1세기말)

       ② 간다라 미술

          ♣ 서북인도의 간다라 지방을 중심

          ♣ 그리스․로마의 신상 조각의 영향

          ♣ 불탑과 조각이 주이었고 회화는 남아있지 않음.

          ♣ 육로를 거쳐 중국과 우리나라에 영향

       ③ 마투라 미술

          ♣ 인도 고대기 미술의 계승

          ♣ 불상조각이 주이며 굽타기의 조각에 영향

          ♣ 명문(銘文)을 갖고 있는 것이 많음.

    

3) 굽타기(4세기~7세기)

   불교미술이 고도로 발달하는 시기이나 힌두 문화의 부흥과 함께 그 영향이 점차로 커지는 시기

   ①석굴사원(石窟寺院)과 불상조각이 중심

   ②아잔타(Ajanta) 석굴

   ③전법륜여래좌상(轉法輪如來座像) 조각

       ♣ 6세기경 작품, 마투라, 사르나트 녹야원에서 발견

   ④중국이나 우리 신라의 조각에 영향

      ♣돈황(敦惶)이나 운강(雲崗) 석굴 조성

 

아잔타석굴(Ajanta Caves)

마하라슈트라주(州) 북서부 타프티강 지류의 만곡부(灣曲部)를 향한 구릉 중복에서 개굴된 29개의 석굴군(石窟群)이다. 특히 제16의 석굴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주제는 불전(佛傳)과 본생설화(本生說話)가 많으며 고전기에 있어서 인도 회화의 최고봉의 유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인도의 남북을 잇는 교통 요지에 가까이 있으며 불교의 전파에 따라 B.C. 1세기경부터 7세기 까지 개굴(開掘)되었고, 승려가 거주하는 승원(僧院)과 스투파(불탑)를 모신 당(堂)이 세워졌다. 당시 승려는 부파불교(部派佛敎)를 신봉하였으며, 불상(佛像)은 전혀 조각되지 않았다.

3세기 사타바하나왕조가 붕괴한 후 잠시 석굴의 개굴이 중단되었으나 5세기가 되자 바카타카왕조하에 대승불교 신도가 대규모의 승원과 스투파를 모시는 당을 개굴하였다. 이때는 불상예배가 성행했기 때문에 스투파의 전면에 커다란 불상을 안치하였고, 승원의 내당에도 불상을 모셨으며, 벽면에 많은 불상을 조각하였다. 이 불상들은 단정한 굽타 양식이다. 벽면에 그려진 회화는 불전(佛傳)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인도 회화 사상 유례가 없는 걸작으로, 그 양식은 중앙아시아․중국을 거쳐 한국에도 전해졌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운강석굴(雲崗石窟)

산시성(山西省) 다퉁[대동(大同)] 서쪽 15km, 우저우강[무주강(武州江)] 북안에 있는 사암(砂岩)의 낭떠러지에 조영(造營)된 중국에서 가장 큰 석굴사원으로 전체길이는 동서로 약 1km에 이르며 석굴의 총수는 42개이다. 동쪽 언덕에 제1~4동(洞), 중앙 언덕에 제5~13동, 서쪽 언덕에 제14~42동이 있다. 북위(北魏)의 역사서《위서(魏書)》의〈석로지(釋老志)〉에 따르면, 사문통(沙門統:종교장관) 담요(曇曜)가 당시 문성제(文成帝)에게 석굴 조영을 주청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른바 ‘담요 오굴(五窟)'이라고 불리는 제16동에서 제20동까지가 이때에 만들어진 석굴로 460년대 초에 조영된 것이다.

운강석굴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의 양식은 제20동의 노좌대불(露座大佛:높이 14m), 제19동의 대불(높이 약 17m)을 중심으로 하는 조상(彫像)에 초기 양식이 표현되어 있는데 치졸하지만 소박한 면과 선으로 구성된 서방 양식이 풍부한 작풍이다. 담요 이후는 전통과 외래 양식이 혼합되면서 다양해졌다. 이 석굴의 융성기는 486년 전후였는데 이 무렵의 불상은 중국 고대의 복제(服制)를 모방하였다. 신체보다도 복제 표현에 유의하여 조각하였고 얼굴은 길며 매우 신비롭다. 북위불(北魏佛) 또는 육조불(六朝佛)이라 하여 후에 하나의 조상 기준이 된 것도 이 무렵의 불상이다.


돈황석굴(敦煌石窟)

중국 간쑤성[감숙성(甘肅省)] 돈황현(敦煌縣) 남동쪽 20km 지점에 있는 불교유적으로 소조불상(塑造佛像)과 벽화 등의 불교미술품 외에 많은 고문서류가 발견되어 동서문화교류사 또는 중국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1907년 영국의 A.스타인과 그 다음해 프랑스의 P.펠리오에 의해 알려졌다. 명사산(鳴沙山) 기슭에 길이 1.6km에 달하는 크고 작은 600여 개의 불교석굴이 있는데, 돈황문물연구소[敦煌文物硏究所]의 조사에 의하면 불상조각이나 벽화가 있는 동굴은 469개소에 달한다.

빙하기의 충적층(沖積層)에 속하는 수성암(水成岩)으로 된 석굴이어서 불상은 모두 소조상(塑造像)이며 4세기 중반부터 13세기에 이르는 1,000년 간 석굴조영자(石窟造營者)들은 벽화의 제작에 힘썼다. 이들 벽화는 표면에 석회를 칠한 벽면 위에 짙은 채색의 불교회화를 치밀하게 묘사했는데, 제작 연대별로는 위대(魏代)가 22굴, 수대(隋代)가 90굴, 송대(宋代)가 103굴이 있다. 그 중에는 청대(淸代)에 들어와서 그린 것들도 있다.

북위(北魏)와 당대(唐代)의 견직물 60여 점, 748년의 문서, 인쇄된 불상 등을 발견 조사하고 계속 연구하고 있다. 또한 돈황문서 중의 불교관계서적을 통해 중국의 불교 수용과정을 엿볼 수 있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4) 밀교기(7세기~12세기)

    힌두교 속에 불교가 융합됨에 따라 불교미술이 힌두교미술과 본질적으로 구별하기 어렵게 되고 특이한

    불교미술을 산출한 시기

   ①팔라(Pala:750~1000) 지배하의 벵갈, 비하르 지역

   ②불교적인 냄새가 없어지고 힌두교의 그것과 구별이 어려움.

   ③11세기 이래 회교도의 침입으로 불상․사원 전부 파괴되어 13세기에 이르러 불교미술의 명맥이 끊어짐.

   ④대표적인 보살상

      ♣ 타라(多羅:Tara) 보살상

 

▣ 인도 불교미술의 발달 ▣

고대기

기원전 5세기

❊ 불상이 없고 불탑이 성행.

❊ 바르후트 불탑이 가장 오래됨.

❊ 불탑에 부처님 대신 상징물(연꽃, 보리수, 법륜 등)로 대체하여 그림.

쿠샤나기

기원후 1세기

❊ 간다라와 마투라를 중심으로 불상이 제작됨.

❊ 간다라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음.

❊ 마투라는 순수 인도전통의 기법을 사용함.

굽타기

4세기~7세기

❊ 불교미술이 힌두문화의 영향을 받음.

❊ 아잔타 석굴이 석굴사원의 대표

❊ 마투라 형식이 성행

❊ 아잔타 석굴의 벽화는 고대인도 회화의 걸작품.

밀교기

7세기~12세기

❊ 불교와 힌두미술이 융합됨.

❊ 불상 이외에도 밀교적 형상인 타라(Tara)와 비쉬누천(天)등이 제작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