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윳따 니까야(Saṁyutta Nikāya)/제12 인연의 모음(NidānaSaṁyutta

몰리야 팍구나의 경(Moḷiyaphaggunasutta, S12:12) : 4가지 자양분과 9지 연기

moksha 2018. 10. 3. 19:41

몰리야 팍구나의 경(Moḷiyaphaggunasutta, S12:12)

 

1. 한 때 세존께서 씨밧티 시에 계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이미 태어난 뭇삶의 위하거나, 혹은 다시 태어남을 원하는 뭇삶의 보양을 위한 네 가지 자양분이 있다. 그 네 가지 자양분1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거칠거나 미세한 물질의 자양분, 둘째는 접촉의 자양분, 셋째는 의도의 자양분, 넷째는 의식의 자양분이다. 수행승들이여, 이 네 가지 자양분은 이미 태어난 뭇삶의 섭생을 위하거나, 혹은 다시 태어남을 원하는 뭇삶의 보양을 위해 존재한다.”

 

2.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존자 몰리야 팍구나2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팍구나] “세존이시여, 누가 의식의 자양분을 섭취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세존]그러한 질문은 적당하지 않다. 나는‘사람이 섭취한다.’고 말하지 않는다.3 만약 내가 ‘사람이 섭취한다.’고 말했다면‘세존이시여 누가 섭취합니까?’라는 질문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말하지 않은 나에게는 오로지‘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자양분이 생겨납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질문이다. 그것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이와 같다. 의식의 자양분은 미래의 새로운 존재의 생성의 조건이고, 그것이 생겨날 때 여섯 가지 감역이 생겨나고 여섯 가지 감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난다.

 

3. [팍구나]세존이시여, 누가 접촉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세존] “그와 같은 질문은 적당하지 않다. 나는‘사람이 접촉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사람이 접촉한다.’고 말했다면‘세존이시여, 누가 접촉합니까?’라는 질문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말하지 않은 나에게 오로지‘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접촉이 생겨납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질문이다. 그것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이와 같다, 여섯 가지 감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난다.”

 

4. [팍구나]“세존이시여, 누가 느낍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세존] “그와 같은 질문은 적당하지 않다. 나는‘사람이 느낀다.’고 말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사람이 느낀다.’고 말했다면‘세존이시여, 누가 느낍니까?’라는 질문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말하지 않은 나에게 오로지‘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느낌이 생겨납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질문이다. 그것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이와 같다. 여섯 가지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난다.”

 

5. [팍구나] “세존이시여, 누가 갈애합니까?”

세존께서 말씀 하셨다.

[세존] “그와 같은 질문은 적당하지 않다. 나는‘사람이 갈애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사람이 갈애한다.’고 말했다면‘세존이시여, 누가 갈애합니까?’라는 질문이 옳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말하지 않은 나에게는 오로지‘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갈애가 생겨납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질문이다. 그것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이와 같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난다.”

 

6. [팍구나]세존이시여, 누가 집착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세존] “그와 같은 질문은 적당하지 않다. 나는‘사람이 집착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사람이 집착한다.’고 말했다면‘세존이시여, 누가 집착합니까?’라는 질문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말하지 않은 나에게는 오로지‘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집착이 생겨납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질문이다. 그것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이와 같다.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고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난다.”

[팍구나]세존이시여, 누가 존재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세존] “그와 같은 질문은 적당하지 않다. 나는‘사람이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사람이 존재한다.’고 말했다면‘세존이시여, 누가 존재합니까?’라는 질문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말하지 않은 나에게는 오로지‘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존재가 생겨납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질문이다. 그것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이와 같다.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난다.”

[팍구나]세존이시여, 누가 태어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세존] “그와 같은 질문은 적당하지 않다. 나는‘사람이 태어난다’고 말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사람이 태어난다.’고 말했다면‘세존이시여, 누가 태어납니까?’라는 질문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말하지 않은 나에게는 오로지‘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태어남이 생겨납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질문이다. 그것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이와 같다.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난다.

 

7. 그러나 팍구나여, 여섯 가지 접촉의 감역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면 느낌이 소멸하며,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면 집착이 소멸하며,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고통, 근심, 절망이 소멸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소멸한다.”

 

몰리야 팍구나의 경이 끝났다.


  1. 네 가지 자양분 : cāttāra āhārā의 한역으로 사식(四食)이라고 하며, 그 네 가지 자양분(음식)은 ①추세식(麤細食, kabalikāra-āhāra) ②촉식(觸食, phassa-āhāra) ③의사식(意思食, mano-sañcetanā-āhāra) ④식식(識食, viññāṇa-āhāra)이다. 추세식(麤細食)을 단식(段食)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①추세식(麤細食) 즉 단식(段食, kabalikāra-āhāra)은 거칠거나 미세한 물질의 자양분으로 먹을 수 있는 자양분으로 육체적인 몸(rūpa-kāya)의 조건이 되는 것이며 ②촉식(觸食, phassa-āhāra)은 감각접촉에 의한 정신적인 몸(nāma-kāya) 즉 느낌(vedanā)을 위한 접촉의 자양분[정신적 자양분]을 말하며, ③의사식(意思食, mano-sañcetanā-āhāra)을 사식(思食)이라고도 하며 업(kamma)을 통한 삼계(三界)의 존재(tayo bhavā)의 생성조건인 재생연결을 가져오는 의도의 자양분[정신적 자양분]을 의미한다. 의도는 업이며 업은 재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④식식(識食, viññāṇa-āhāra) 즉 의식의 자양분[정신적 자양분]은 주석서에 따르면 사몰심(死沒心, cuticitta)으로서 죽을 때의 마음이며 이는 수태의식[결생식(結生識)] 즉 재생연결식(再生連結識)을 의미한다. 자양분이란 뜻은 원래 ‘나르는 것’ 이란 의미인데, 일반적으로 자양분이나 음식으로 전용되었다. 여기서는 자양분의 의미가 집착(執著)을 뜻하는 우빠다나(upādāna)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빠다나(upādāna)는 땔감을 의미하는데 āhāra도 역시 불이나 등불의 자양분으로서 땔감을 뜻한다. ‘기름과 심지가 소모된다면 등불은 자양분이 없어 소멸될 것이다.’ 이 경구에서 āhāra가 갈애를 통해서 조건지어진다는 사실은 연기의 고리에서, 취착 즉 upādāna가 갈애를 통해서 조건지어진다는 사실과 일치한다. (이 주석이 맛지마니까야의 주석으로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본문으로]
  2. 몰리야 팍구나(Moliya Phagguna) : 수행승의 이름인데 몰리야(Moliya)는 몰리(molī = cūla)의 형용사로 길게 자란 머리를 머리 위까지 땋아 올려 보석으로 장식한 결발을 뜻한다. 그는 언제나 수행녀들에게 친절했고 수행승과의 토론에서 수행여의 편을 들었다. 이것이 부처님께 알려지자 부처님께서 ‘톱에 대한 비유의 경(Kākacūpamasutta, MN.Ⅰ.122)을 설했다고 한다. 한편 깔라라캇띠야의 경(kaḷārakhattiyasutta, S12:32)에서는 깔라라캇띠야(kaḷārakhattiya)가 싸리뿟따와 대화하면서, 몰리야 팍구나가 환속했다고 보고하는 내용이 있다. [본문으로]
  3. 팍구나가 4가지 자양분을 섭취하는 자아(自我)를 상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임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으로]